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영화/ '음란서생'의 한석규와 이범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화/ '음란서생'의 한석규와 이범수

입력
2006.02.27 01:03
0 0

한석규와 이범수는 ‘음란’(淫亂)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한석규의 출연작 중 좀 야하다 싶은 영화를 꼽는다면 ‘닥터 봉’ ‘주홍글씨’ 정도인데, 그나마도 통속적인 ‘육체의 향연’을 내세운 작품은 아니다. 이범수도 다르지 않다. ‘몽정기’에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그의 역할은 제자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근엄한 선생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야하지만 격조 있는 퓨전 사극 ‘음란서생’에 잘 어울린다. 명망 높은 사대부의 자제 윤서(한석규, 이하 한)와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 이하 이)이 음란하기 짝이 없는 글과 그림에 빠지면서 만들어내는 웃음은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시대 음란 서적을 둘러싼 일대 스캔들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풀어냈지만, 사극은 사극이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충무로에서 화제를 모았고, 많은 배우들이 군침을 흘린 영화지만, 두 사람 다 연기 인생의 첫 사극 도전이기에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관객과 소통하기에는 가장 빈약한 장르”(한)라는 생각도 들었고, 정작 촬영에 들어가서는 “갓과 도포 자락이 낯설고 불편”(이)했다. 하지만 그 “어떤 현대물보다 더 현대적”(한)이고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이) 출연을 결정했다.

여느 영화처럼 몸은 힘들었지만 촬영 내내 둘의 마음은 편안했다. 한석규는 어려울 때 위로를 해주었던 좋은 후배 이범수가 믿음직스러웠고, 이범수는 무명시절 자신의 지향점이었던 ‘석규 형’이 있어 든든했다. “서로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좋은 파트너죠. 아무리 힘들어도 빨리 촬영장 가서 얼굴 보고 싶고…. 좋은 연기 앙상블이 안 이뤄질 수가 없죠.”(한) “어떤 돌발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연기의 힘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역시 한석규구나’ 생각했어요.”(이)

한석규와 이범수의 만남은 ‘접속’ 이후 9년 만이다. 그 사이 영광과 좌절의 부침이 있었다. 한석규는 ‘쉬리’와 ‘텔 미 썸딩’ 등으로 흥행 질주를 하다 ‘이중간첩’으로 제동이 걸렸고, ‘주홍글씨’와 ‘그때 그 사람들’로 쓴 맛을 봤다. 이범수는 한계단 한계단 밟으며 주연 자리에 올라섰지만, ‘슈퍼스타 감사용’과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등의 흥행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둘 다 최근 흥행의 ‘진맛’을 보진 못했으나 ‘음란서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초연하다. 그렇다고 작품성만으로 ‘젠 체’ 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이를 낳는 심정으로 영화를 잘 내놓으려 최선을 다할 뿐, 결국 영화는 관객이 키우는 것”(한)이고 “1,000명과의 어설픈 교감보다 100명과의 진실한 소통”(이)을 바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요즘 작품 욕심을 억누르기 힘들다. 한석규는 이미 ‘구타유발자’의 촬영을 마쳤고, 이범수는 ‘잘살아보세’에 출연 중이다. 한석규는 “범수랑 제 나이 때인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 배우의 전성기인 듯해요. 연기 면에서는 쇠를 먹어도 소화가 가능한 시기죠”라며 의욕을 감추지 못한다. 이범수도 “욕심도 욕심이지만 아직 젊은 배우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음란한 글과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자아실현에 나서는 극중 윤서, 광헌과 달리 두 사람은 오직 연기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한다. “다시 인생을 산다면 골프선수가 되고 싶지만, 현생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연기만 실컷 해보고 싶습니다.”(한) “저에게는 일이 여행이고 휴식이죠. 그래서 저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큰 축복입니다.”(이)

▲ '음란서생'은

정적도 왕비도 함께… 거 참 신묘한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윤서는 문약한 백면서생이다. 정적 집안의 모함으로 동생이 곤죽이 되도록 고문을 당해도 복수를 꿈에도 생각치 못한다. 그런 그가 어명을 수행하다 우연히 한 난잡한 소설을 접하게 된다.

윤서는 울림 없는 상소(上疏)보다 숨은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이 민망한 서적의 대중성에 매료돼 '음란서생'이 된다. 작품 완성도를 위해 정적 집안의 광헌도 끌어들이고, 왕비 정빈(김정민)의 유혹을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음란서생'은 야하지만 천박하지 않은, 영화 속 표현대로 '신묘불측'(神妙不測)한 작품이다. '남녀상열지사'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은근하다. 음란소설을 놓고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로 웃음을 제조하면서도 보수적인 시대상에 대한 풍자도 놓치지 않는다.

'음부'라는 적나라하고도 직설적인 하위문화의 단어를 통해 상소와 왕권(王權)으로 대변되는 상위문화를 유쾌하게 조롱한다. 배경은 조선시대지만 '댓글'과 '~폐인'이라는 인터넷 문화가 만든 신조어가 이물감 없이 포개진다.

영화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진중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성을 드러내놓고 즐기지 못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의 감독 데뷔작이다. 현실과 음란서적이 몸을 섞는 독특한 구성이 탄탄하다. 화면의 빼어난 색감과 전통 복식도 눈요기 거리다. 한석규 이범수 김민정 등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고, 음란서적을 판매하는 황가 오달수의 감초 연기도 쏠쏠한 재미거리다. 초반의 느린 극 전개, 2시간20분의 상영시간은 다소 지루한 감을 준다. 23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