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첫 주권 정부가 사실상 친 이란계에 의해 장악되면서 미국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의 이란 봉쇄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 중동 전역이 대미관계에서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4일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 이란 핵개발저지를 위한 미국의 노력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실시된 총선에서 친 이란계 시아파 연합 정당인 통일이라크연맹(UIA)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정치권을 장악했다는 의미다.
현재 이라크 내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은 시아파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인 알리 알 시스타니와 차기 총리로 결정된 이브라힘 알 자파리, 극렬 반미저항의 선봉에 서있는 시아파 소장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 등이다.
이들 3인방에다 시스타니의 직ㆍ간접적인 통제를 받고 있는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의 압둘 아지즈 알 하킴 의장도 시아파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친 이란계 인사다. 알 자파리와 알 하킴은 사담 후세인 시절 이란에서 오랫동안 망명생활을 했고 알 시스타니는 이란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알 사드르는 미국과 이란이 무력 충돌할 경우 이란을 위해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란은 전체 인구의 89%가 시아파여서 양측간 종교적 공감대도 크다.
미국은 친 이란계가 포진하고 있는 UIA가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란과 연계해 이슬람 신정국가를 세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바트당 당원 출신인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국민리스트(INL)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사설을 통해 “알 자파리가 전체 의원수의 4분의 1도 안 되는 지지로 차기 총리로 지명된 것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이라크 내 친 이란계 인사들이 미군 철수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시아파 지도자들이 이란으로부터 재정과 군사적 지원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 내정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라크 시아파 군사조직 등을 지원해 왔고 비영리단체들을 통해 이라크에서 의료지원 사업을 펼쳐 왔다.
또 사회기간시설 복구사업에도 이란 기업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라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이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라크 내 친 이란계와 이란 정부가 가세해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공격해 미국 내 반전 여론을 조성할 경우 미국의 중동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