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여기까지는 전통적인 개념의 중독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이름의 중독들이 등장해서 진료실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중독, 게임중독, 채팅중독, 휴대폰중독, 쇼핑중독, 일중독, 운동중독 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비물질중독 또는 행위중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그냥 강한 자극이면 다 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자극중독’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정보화 시대, 멀티미디어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자극의 홍수 속에 빠져 있습니다. 더욱이 웬만한 정도의 자극으로는 눈이 번쩍 뜨이지를 않으니 점점 더 강하고 다양한 자극을 추구하게 됩니다.
스포츠도 이종격투기와 같이 더 과격하거나 화려한 것들이 인기를 끌고 영화나 드라마도 폭력, 섹스, 반전이 없으면 시시합니다. 잔잔한 선율에 여운까지 즐기던 음악도 이제는 강하고 빠른 비트에 자극적인 볼거리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강한 마약으로 황홀감에 도달하고 나서 마약이 없으면 불쾌해지거나 금단 증상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중독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약과 같이 다양하고 강한 자극이 넘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그만큼 중독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중독을 권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중독에 대해서 병적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잘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전통적인 중독은 대부분 중독 물질이나 행위 자체가 유해한 것으로서 거의 예외 없이 병적 중독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근래에 나타난 ‘행위 중독’들의 경우는 중독의 원인인 행위 자체는 긍적적인 측면도 다분히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학계와 매스컴에서 각종 중독의 진단 기준을 만들어 조사 대상자 중 상당수가 행위 중독환자로 진단됐다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시되는 기준에 비출 때 여러 가지 행위 중독으로 짐작된다고 해서 상담을 청해오는 경우, 실제로는 그렇게 해롭거나 병적이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중독이라는 진단이 남용되고 있는 것이고, 이 또한 사회가 중독을 권하는 꼴입니다.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대학생 D군과 E군이 있습니다. 똑같이 인터넷에 과도하게 빠져 있고, 하루라도 컴퓨터를 켜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금단 증상을 경험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인터넷상에서 제공되는 사이버중독 자가진단기준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D군은 아무런 생산성 없이 점점 더 현실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은둔형 외톨이의 모양새를 갖추어가는 반면, E군은 갈고 닦은 실력으로 결국 현실 사회에 임했을 때 뛰어난 정보력을 발휘합니다. E군에게서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선비 스타일까지 연상됩니다.
비단 인터넷의 경우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문화, 현대사회의 확장된 대인관계, 건강을 위한 습관, 소비의 시대에 좋은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 등에 상당히 몰두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적응력이며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중독에 빠져 사회생활이 파괴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레 중독에 빠질 것을 두려워해 위축될 것은 없습니다.
결국 사회가 권하는 중독으로부터 내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모두 이해해야 합니다. 즉 현대 문명의 이기, 그리고 새로운 생활양식이라는 변화에 대해서 병적인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자세와, 이에 대해 어떻게 적응하고 잘 활용하는가입니다.
지금, 중독을 권하는 현대사회에서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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