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갤러리에 ‘전시’한다. 전시장에는 침대가 있다. 거기서 자든지 쉬든지 마음대로다. 벽에 영상이 펼쳐지고, 설치공간이 놓인 바닥과 전시장 공간 사이로 음악이 흐른다.
침대는 연주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무대이기도 하다. 얌전하게 앉아서 조용히 듣는, 일반적인 음악회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다. 여기서 음악과 영상과 설치는 한 덩어리다. 조금 어리둥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이 1960년대에 일찌감치 시작한 일이다. 백남준의 TV ‘조각’은 소리와 영상의 변조로 음악을 ‘보고’ 빛을 ‘듣는’ 공감각적 예술이 아닌가.
또다른 풍경. 콘서트홀에 들어온 관객들이 휴대폰 음원을 마음껏 울린다. 음악회장에서 금지된 소음이 여기서는 당당한 음악이다. 오페라 아리아와 시와 대중가요가 해체와 재구성의 콜라주로 자유롭게 뒤섞인다. 음악과 소음,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청중과 음악, 창작과 연주를 가르는 경계는 전부 사라지고 음악은 일상 그 자체가 된다.
이 독특한 음악 전시와 공연은 현대음악 작곡가 한옥미(42ㆍ가톨릭대 교수)씨가 기획한‘잠과 꿈’프로젝트의 일부다. 잠과 꿈이라는 극히 일상적인 경험을 음악과 영상, 즉흥연주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로 펼쳐보이는 작업이다. 음악전시‘미미를 위한 자장가’는 22~28일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 5층 갤러리에서 열린다. 미미는 그가 애지중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작곡한 음악 뿐만 아니라 영상과 설치작품도 전부 그의 작품이다. 공연은 즉흥연주와 퍼포먼스 중심으로 진행되며, 클래식, 재즈, 국악 연주자들과 성악가, 미디어 아티스트, 다른 작곡가도 참여한다. 인사아트센터 갤러리에서 2회(24, 27일 오후 6시), 음악회장인 여의도의 영산아트홀에서 28일 ‘2월의 여름’을 주제로, 여섯 달 뒤인 8월28일 ‘8월의 겨울’을 주제로 2회 한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곡가 한옥미씨는 2002년부터 매년 음악전시를 해왔다. 이 낯선 형식은 “모든 경계를 깨고, 좀 더 편안하게 대중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잠을 자고 꿈을 꾸는 것처럼 음악도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다. 어렵고 고귀한 음악? 딱딱한 콘서트홀? 왜 꼭 그래야 하는가. 누구든 와서 편안하게 보고 듣고 즐기면서 각자 또다른 꿈을 생산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현대음악은 소외돼 있다. 작곡 발표회를 보라. 말이 좋아 학구적인 공연이지, 실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별 수 없이 한 귀퉁이에서 하는 집안 잔치가 대부분이다. 비조성의 난해한 음악만이 현대음악의 전부는 아니다. 세상은 변해가는데, 작곡가들이 비조성 음악에만 머물다 보니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게 아닐까.”
24일 갤러리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박용석, 미국인 트럼펫 연주자 조 포스터와 재즈 피아니스트 계수정이 판을 벌인다. 계수정의 세살 배기 아들이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로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마치 꿈이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27일 공연은 작곡가 이만방의 꿈의 세계를 전통 가곡(시조시를 소규모 국악관현악 반주에 얹어 부르는 노래)의 가객 이아미와 단소 연주자 김휘곤이 펼쳐보인다.
관객들의 휴대폰 퍼포먼스는 28일 영산아트홀 공연의 첫 순서다. 여러 유명 오페라 아리아의 콜라주와, 황인숙 허수경 이수명의 시에서 음성학적 특징을 부각시켜 읊조리는 노래로 엮은 한미옥의 작품 ‘2월의 여름’이 그 뒤를 잇고, 끝으로 재즈 연주자들이 ‘해변으로 가요’‘서머타임’등 여름 하면 떠오르는 대중적인 노래들의 즉흥연주로 판을 막는다. 공연문의 (02)391-9631, 인사아트센터 (02)736-102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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