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안별 내용은
한미 양국은 한미 동맹 조정을 마무리짓기 위해 15일까지 괌에서 6차 안보정책구상(SPI)회의를 갖고 있다. 동맹의 청사진이랄 수 있는 ‘미래 한미동맹 비전’의 초안도 예상되고 있다.
동맹 비전과 관련해 특이한 점은 지난해 4월 2차 SPI회의가 끝난 뒤 국방부가 “한반도 안보환경을 화해협력과 평화공존, 통일의 3단계로 분류하는 데 한미가 합의했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 분류법은 2002년 작성된 ‘공동협의 보고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보고서는 ‘주한미군의 미래역할 변화’와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등에도 주목,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나 주한미군 감축협상 등 동맹 조정 협상이 보고서를 토대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전략적 유연성
보고서는 북한 위협이 소멸한 뒤 상정 가능한 아시아 전략구도를 토의했다며 “역내 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한미간 상호 운용성이 증가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주한 미군이 지역분쟁에 개입하기 위해 한반도 밖으로 나간다는 개념의 ‘전략적 유연성’이 상기되는 문구다.
물론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해외주둔미군의 재배치(GPR)를 천명한 2003년 11월 이후 등장한 개념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보다 한 달 앞선 미래동맹정책구상(FOTA)회의 석상에서 이 개념을 꺼낸 것으로 미뤄 보고서를 작성하던 시점에서도 이 개념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는 올해 초 전략대화를 통해 “주한미군이 역외로 이동하는 전략적 유연성은 인정하되 한국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전략적 유연성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최근 최재천 의원이 전략적 유연성 협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다시 현안이 되긴 했지만 동북아 기동군으로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미측의 의도는 강고해 보인다.
동국대 이철기 교수는 “미국은 보고서를 작성할 시점 이전부터 전략적 유연성을 내비쳤다”며 전략적 유연성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5차 SPI회의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공식 제기했고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협의를 적절히 가속키로”하는 데 합의했다.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로 이행하는 동맹구조의 변화”라는 대목이 나온다. 평화공존 단계에서 미국은 “한국군 주도의 한반도 방위 전환지지”도 약속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쉽게 풀릴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안에 로드맵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며 조급증을 내고 있다. 속앓이의 속내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작통권 문제가 바로 한미연합지휘체계와 연계된 문제라서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전시에 한국군을 지휘통제하는 작전통제권을 갖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전시작통권이 한국군으로 넘어오면 한미연합지휘체계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연합지휘체계도 SPI의 논의대상이지만 한미 양측이 카드를 절대 비밀에 부쳐 상당한 산고를 겪고 있다는 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PSI와 북한 위폐 제조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고 역외 훈련에 참관단을 파견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지난 달 발표했다.
PSI는 불법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하거나 운반이 의심되는 항공기나 선박을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하는 대테러 네트워크로, 북한은 이 구상이 적용되는 대상국 중 하나이다. 정부는 북한을 의식, 실제 훈련에 참가하라는 미국의 요청은 거부했다고 한미간 협상의 성공을 자평했다.
하지만 보고서에서도 ‘한반도 및 역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한미동맹의 공동 목표로 적시하는 등 미국이 오랜 동안 한국 정부를 압박해온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이 PSI 훈련에 직접 참가하는 상황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또 남북관계 발전의 제1단계인 ‘화해ㆍ협력 단계’의 우려 사항으로 “마약 밀매 및 화폐 위조 등 북한의 초국가적 위협”을 꼽았다. 미국은 북 핵 6자 회담의 진행과 별도로 북한의 위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오래 전부터 명확하게 해온 셈이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 보고서의 의미는/ FOTA·SPI등 동맹조정 협상서 큰 틀을 제공
용산 미군기지 이전,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개념 도입,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참여정부 들어 한미 양국은 동맹관계 조정을 둘러싸고 심각한 파동을 겪었다.
하지만 한미동맹 조정 문제는 참여정부에서 불거진 게 아니다. 1999년 피터 페이스 당시 미 국방부 차관이 세계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 변화 등 동맹 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공식화했다.
한미는 이후 2년 동안 한미동맹 조정을 위한 준비 협의를 가졌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 모든 현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의 의제를 정하는 사전협의 성격이 강했다. 이 과정을 거쳐 2002년 말께 ‘한미동맹 미래 공동협의 결과’라는 보고서를 공동으로 작성하고 12월 양국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3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보고했다.
SCM은 이를 토대로 미래동맹정책구상(FOTA)을 추진한다고 결정하고, 다음 해 2월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1차 FOTA회의가 열렸다. 보고서는 한미동맹 조정을 위한 협상의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FOTA회의에서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포함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집중 거론됐지만 그 뿌리는 ‘주한미군의 입지 약화’를 우려하고 ‘미래역할 변화’를 지적한 2002년 공동협의 결과 보고서라 할 수 있다. FOTA의 바통을 이어 미래 한미동맹 협의체로 출발한 안보정책구상(SPI)도 이 보고서의 연장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보고서의 가장 큰 의미는 동맹의 기본노선을 정했다는 점. 이에 대해서는 “ 남한 주도의 통일한국을 미국이 지지하는 대신,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한국이 인정하는 식으로 거래를 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 보고서에 나타난 통일단계/ 과거 정부안에서 남북연합단계 빠져
‘한미동맹 미래 공동협의 결과’ 보고서는 한반도 통일을 화해협력→평화공존→통일 등 3단계로 상정하고 있다. 과거 우리 정부가 마련했던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과 비슷해 보이지만 남북연합을 거치지 않고 남한 주도로 통일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화해협력 단계는 남북 교류가 확대되고 기초적 군사신뢰구축이 이행될 때로 정의했다. 이 단계에서 한미 양국은 강력한 동맹관계로 정전체제를 유지한 가운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에 역량을 집중한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이 지속되고 재래식 군사위협이 변하지 않는 만큼 북한의 국지적 군사도발과 테러,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재발사, 마약밀매나 화폐위조 등 초국가적 위협 등이 한미 양국의 공통된 우려사항인 단계다.
평화공존 단계는 정전협정이 여전히 유지되는 가운데 북한의 군사위협이 현저히 감소하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이뤄지는 시기로 판단했다. 이 때쯤이면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할 수 있고 평화협정 체결도 준비단계에 돌입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군사도발과 테러 등 북한의 초국가적 위협은 지속되는 것으로 우려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한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증가를 또 다른 우려사항으로 지목했다.
통일 단계에서는 한국이 한반도 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하지만 한미일 3국간의 안보협의는 지속되고 주한미군도 계속 주둔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상정한 이 단계에서는 과거 북한 정권의 수혜세력이 벌일지 모를 저항과 북한주민의 남한 대량유입에 따른 사회혼란이 우려사항으로 지적됐다. 미국은 주변국과 통일한국뿐 아니라 자국 의회로부터도 주한미군 철수 압력이 강화할 것을 걱정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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