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전자업체 연구소에 근무하는 A씨. 회사 내에서 항상 ‘감시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맘이 편치 못하다. 그의 신분증에 부착되어 있는 ‘무선전자태그’(RFID)는 레이더가 비행기를 잡아내듯 위치 탐지가 가능해 출ㆍ퇴근 시간 확인은 물론 건물 내 몇 층 어느 방에 있는지도 추적 가능하다. 하루에 몇 시간을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지, 그 중 담배를 피기 위해 얼마나 자리를 비웠는지도 회사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건물 내에서 사용하는 휴대폰은 모두 회사의 구내 기지국을 통하게 되어 있다. ‘맘만 먹으면 도청도 가능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 그는 “아침에 PC를 켜면 내가 오늘 할 일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지 분 단위 시간표가 나오고, 인터넷을 통해 어떤 사이트에 접속했는지 등도 모조리 기록된다”며 “완벽히 통제 당한다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회사 내 보안 관리 및 경영 정보화 시스템이 근로자의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4일 발표한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조사에 응답한 근로자 204명 중 51.3%가 직장에서 카메라나 위치추적장치,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 등에 의해 감시 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중 74.6%는 수집된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지 못했고, 회사가 이러한 장비를 설치하면서 노조와 협의한 경우도 24.2%에 불과했다. 감시 방법으로는 인터넷 사용추적(56%), 전자출입증(48%), 전사적자원관리(ERP, 43.5%) ,감시카메라(34.6%), PC 저장내용 모니터링(31%), 전화 송수신 내역 기록(24%), RFID(10%), 지문 등 생체인식(8.6%)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측은 “근로자 감시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등 사회ㆍ정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에 따라 각종 감시시스템의 상황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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