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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왕남'과 워드 선풍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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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와 하인즈 워드의 인간승리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히 사회현상이라 할 만한 돌개바람이다.

영화 특유의 흡인력을 감안해도, 인구 4,300만의 나라에서 순식간에 1,000만 관객이 몰린 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평론가들은 촘촘한 이야기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영상, 은은하게 깔린 동성애 코드를 폭발적 인기의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동성애 코드라면 영화 ‘크라잉 게임’ 등이 각인한 칙칙함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왕남’에서의 동성애 코드는 엷은 색채와 낮은 소리를 하고 있어서 영화 전체의 맛을 살리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별하기'로서의 엿보기

그런데 동성애 코드로 힘이 보강된 ‘왕남’의 폭발적 인기가 정작 동성애, 또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해소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2000년 이후 한국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기 시작한 동성애 코드가 그랬듯 ‘왕남’도 동성애를 재미있는 볼거리로 제공함으로써 관객이 동성애를 ‘이상한 소수’의 문제로 보고, 자신들과 구별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남’의 동성애 코드는 다수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그것을 강화할 뿐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지적은 워드 열풍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홀어머니 아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서도 옆길로 새지 않고 올곧게 자란 미식축구 스타란 것만으로도 보편적 감동의 요소가 충분하다. 여기에 홀어머니의 ‘한국적 헌신’, 워드의 효성과 보은의 마음가짐은 가족사랑에 목마른 미국사회, 전통적 가치가 희석되는 한국사회에서 동시에 빛났다.

미국에서는 ‘흑인’으로, 한국에서는 ‘혼혈아’로 비쳐지는 그가 뿌린 빛이기에 더욱 밝다. 그의 인기를 타고 모처럼 혼혈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것으로 보아, 적어도 한국에서의 워드 열기에는 ‘혼혈 코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워드의 인기가 다른 혼혈아, 특히 짙은 얼굴색의 혼혈아에 대한 한국사회의 ‘구별하기’ 의식을 희석하리란 기대는 무망하다. 그의 성공은 영웅 신화가 그렇듯, 극히 드문 예외일 뿐이다.

또 신화에 대한 집단적 환호는 일반적 현실 상황을 은폐, 결과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걱정스럽다. 워드 열풍이 미국 내의 찬사에 기댄 바 컸음을 생각하면 되돌아 볼 점이 더욱 많아진다. 스스로의 감동과 찬사까지 외부의 ‘권위’로 보증 받아야 힘을 얻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이런 의식의 의존성은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이다. 소수자 구별하기를 통해 스스로를 다수자 집단에 포함시켜 심리적 안정을 얻는 도피 심리와도 통한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에서, 한국 정치문화는 중간집단 형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흩어진 개인이 직접 중앙 권력을 향해 뛰어들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보았다. 타문화 인식에서의 식민주의적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분석은 정치문화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사회 전반에 번진 휘몰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소수자 문제 흐리는 영웅담

‘왕남’과 워드 열기도 휘몰이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 소용돌이에 아직 정치적 불순물이 혼입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구름이 많다고 바로 비가 되어 내리진 않는다. 구름 속의 수증기가 승화해 달라붙을 얼음 씨나 먼지 알갱이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물방울이 달라붙고, 다른 씨들과 합쳐져 무거워지면 아래로 떨어지다가 녹아서 비가 된다.

운집한 대중에 정치적ㆍ이념적 씨알이 뿌려지면 걷잡을 수 없는 폭발력을 갖는다. 휘몰이 문화의 위험성도 거기에 있다. ‘왕남’과 워드 열기에서 확인되는 대중의 함성이 앞으로 월드컵 축구대회에서의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정도의 무해한 환성으로 끝나기를 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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