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평가를 논외로 하면, 이효리의 솔로 데뷔곡 ‘텐 미니츠’(10 minutes)는 한국 댄스음악의 분기점이 됐다. 이 노래의 성공으로 한국에서도 힙합 클럽 음악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그건 이효리였기에 가능했다.
섹시한 외모와 밝고 귀여운 캐릭터를 함께 지닌 그는 서구 댄스음악에 담긴 섹시코드를 한국식으로 소화하는 해법을 제시했고, 수많은 여가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효리는 한국 가요계의 섹시코드 경향을 주도하는 ‘트렌드 리더’이고, 대중이 그의 음악보다 스타일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집 ‘다크 엔젤’(Dark Angel)을 들고 돌아온 이효리는 12일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서 선보인 첫 무대를 통해 그가 자신의 그런 위치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줬다.
타이틀 곡 ‘Get ya’에서 강한 기타 연주를 앞세우고 패션도 핫팬츠 등으로 보이시한 느낌을 주는 등 섹시함에 ‘카리스마’까지 얹어 다른 섹시파 여가수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물론 섹시함을 포기한 건 아니다. 노래 도중 갑자기 상의를 벗는 ‘깊이’의 무대처럼, 노골적인 노출보다는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는 퍼포먼스로 더 깊은 자극을 유도한다. 그러나 새롭게 선보인 이런 ‘컨셉’은 그 안에 담긴 ‘내용물’과 충돌하면서 이효리만의 새로움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10 minutes’ 때만 해도 클럽 음악은 대중에게 생소했다. 하지만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에서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Do something’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지금, 표절이건 아니건 ‘Do something’과 유사한 ‘Get ya’가 대중에게 신선함을 주기는 어렵다.
또 ‘Get ya’나 ‘Dark Angel’처럼 ‘섹시 카리스마’라는 컨셉이 반영된 곡들은 파워풀 한 보컬이 필요하지만, ‘겨울시선’ 같은 발라드 곡에서도 고음을 거의 쓰지 않을 만큼 음역대가 좁은 이효리는 곡에 걸맞은 강렬함을 싣지 못한다. 역동성이 강조된 안무 역시 부드러운 웨이브로 섹시함을 연출하는데 능한 이효리에게는 남의 옷처럼 어색해 보인다.
오히려 인상적인 것은 새로운 컨셉의 부담감을 덜어낸 곡들이다. 이효리의 목소리가 가진 경쾌한 섹시함을 살린 ‘Straight up’ ‘Closer’ 등은 세련된 클럽음악 리듬의 완성도에 집중함으로써 댄스음악의 트렌드를 이끄는 ‘가수’ 이효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같은 록 기타를 써도 그에게 어울리는 건 파워풀한 ‘Get ya’가 아니라 밝은 멜로디로 풀어낸 ‘E.M.M.M’ 같은 곡이다. ‘트렌드 리더’의 면모가 컨셉과 내용물의 충돌로 퇴색한 반면, 기대하지 않았던 ‘음악’의 완성도가 기대 이상인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이효리가 새로운 컨셉 만들기에 매달려 해외 가수를 따라 하는 대신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악과 춤에 주력했다면 결과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해외의 트렌드를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잘 소화한다는 것만으로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 이효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직접 창조할 수 있는 ‘트렌드 메이커’로서의 능력이다.
가수에게 컨셉이란 인형놀이 하듯 옷만 갈아입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결국 음악에서 나온다.
★한국일보에 ‘TV홀릭’ 칼럼을 연재중인 대중문화 평론가 강명석씨가 15일 본지 객원기자로 위촉됐습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