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는 제자들로부터 꽃다발이나 선물을 받는 선생님인가?
졸업의 계절에 우스개처럼 떠도는 ‘좋은 선생님 판별법’이다. 필자는 ‘학생들 스스로 모금해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돕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선생님인가?’도 그 판별법에 추가하고 싶다.
놀랍도록 기발한 아이디어로 모은 기금을 가지고 지구촌의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을 도와달라며 유니세프로 찾아오는 학생들 뒤에는 예외없이 멋진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성금모금 학생뒤엔 어김없이 계셔
학생들 가슴 속에 숨어있는 끼와 따뜻한 마음을 한껏 발산시킬 기회를 주는 선생님. 주입식 수업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창의성과 협동심, 그리고 무엇보다 나눔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선생님.
구리여중 학생들은 교내행사 때 이색코너를 운영했다. 어깨 주물러주는 마사지 코너, 무표정하게 버티는 친구를 웃기지 못하면 벌금 내는 코너, 떡볶이코너 등을 진행하면서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과 보람까지 덤으로 얻었다고 학생들은 기뻐했다.
서울금호초등학교 어린이들은 파키스탄 지진 피해 어린이들을 돕자고 호소하는 전단을 만들어 모금함을 들고 나섰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목소리도 기어들었지만 점점 용기가 나더란다.
대일외고 학생들은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이 어린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자’며 호소했다.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의 주머니까지 열게 한 것이다.
책이나 장난감과 옷가지 등 쓰던 물건을 팔아 기금을 마련했다는 학생들도 종종 유니세프를 찾는다. 여수중앙여중 학생들처럼 1년 동안 쓰고 남은 학급비로 ‘쫑파티’를 하려다 좀더 뜻있는 일에 쓰자며 용돈까지 보태 가져오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은 미래의 주인공들이 넉넉하고 따뜻하게 나눌 줄 아는 지구촌의 ‘좋은 이웃’으로 자라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빡빡한 학사일정 때문에 평소에는 학생들 스스로 계획하고 진행하는 입체적 체험활동이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아쉬워한다. 정상수업이 어려운 학기말이라든가 축제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에는 굶주리는 이웃을 상징하는 그릇을 전교생이 흙으로 빚어 굽도록 하는 학교들이 많다. 그릇을 학교나 교육위원회 등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는 장소에 전시하고 팔아서 구호기금을 마련한다. 단순한 미술수업이 아니라 전시, 판매, 나눔 실천으로 이어지는 입체적 교육활동인 셈이다. 이런 방법을 응용한다면 한국에서도 정규교과활동을 다채롭게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이웃' 교육 정규 교과활동으로
미시간주 파밍튼의 교육 공청회장에서 필자가 샀던 그릇에는 ‘나를 채워주세요’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서툰 솜씨로 울퉁불퉁 빚은 그 그릇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세계 67억 인구 가운데 8억명 이상이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지구촌. 해마다 5세 미만 어린이 1,100만명이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초등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어린이도 1억명을 헤아린다.
유니세프를 통해 잘 사는 나라들로부터 도움받던 한국이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은 1994년. 도움을 주는 37개국에 포함된지 10년만에 세계에서 13번째 후원국이 되었다. 기업을 포함한 사회 각 분야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특히 작은 나눔을 실천한 개인들이 가장 큰 몫을 했다.
앞으로 나눔의 기쁨을 온몸으로 익히며 자란 학생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면 한국은 더욱 인심좋은 지구촌 이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경희ㆍ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세계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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