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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우석 사태로부터 배우기

입력
2006.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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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우석 교수 사태와 관련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황 교수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 사태 때문에 혹시 우울증이 생긴 환자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선 개인적으로 배신당한 기분이 크다. 나 자신도 처음에는 과학자라면 모두 꿈꾸는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이 실린 것을 보고 자랑스러웠다. 더구나 젓가락 기술 운운은 대단히 매력적인 묘사였다. 오랫동안 우리가 가져온, 한국에 무슨 좋은 것이 있나, 하는 자조의 기분을 일거에 날려버린 어구였다. 그런데 그게 모두 거짓이라니.

둘째 황 교수에 쏟아부어진 엄청난 연구비에 대한 자괴감이다. 우리 보통 교수는 연구비 얻기도 어렵지만, 얻은 후에도 연구비 정산과정이 엄격하여 여간 고생이 아니다.

셋째 나 자신이 의학 연구자이기 때문에 이후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면 더욱 까다로운 심사를 받을 것이라는 각오를 해야 한다.

끝으로 이번 사태로 한국인은 너무 쉽게 흥분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더 확인되었다. 기초연구 중 일부에 성공했을 뿐인데도 병의 치료가 금방 될 것이라고 선전되어 모두 흥분했고, 특히 환자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우리는 너무 성급했다. 우리는 과연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나 하는 답답한 심정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 이 사태를 정리하고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선 우리 과학자들은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도 많은 학자가 있고 그 외의 다른 생명공학 분야에 의욕이 넘치는 수많은 연구자가 있다. 이번 사태로 이들이 좌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연구 절차와 방법에서의 윤리 문제에 대해 새삼 각성하게 되었다. 사실 국내 학술지의 심사기준에도 이미 국제적 수준의 윤리규정이 잘 도입되어 있어 젊은 연구자들이 그대로 준수하도록 배우게 해야 한다. 우리는 황우석 개인에 배신당한 것이지, 전체 한국인의 재능에 배신당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인이 흥분 잘한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람들이 분노, 냉소, 속상함, 안타까움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은 한국인의 매력이기도 하다. 붉은악마의 응원도 그렇고, 한류라는 매력을 내뿜는 한국인 연예인들의 감성도 그렇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우리의 자질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다 우리는 이번에 거짓은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거짓이 밝혀지도록 이끈 사람들이 자랑스럽게도 우리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밝혔고, 이제 우리가 이를 개선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감정표현이 신중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감정적인 것도 좋지만 감정과 지성 사이에는 균형이 이루어져야 함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환상적 기대보다, 진실한 그러나 쓰라린 긴 과정을 거친 후라야 궁극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끝으로, 배아 연구가 초점이 되고 있지만, 사람의 생명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과학연구나 윤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외경(畏敬) 차원의 문제임을 배우게 되기를 희망한다.

민성길<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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