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마다 ‘해방전후사’가 화제다. 2월 8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라는 2권짜리 논문집 때문이다. 그것이 정치적 논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27년 전에 출간되었으며 50만부 이상이 팔려 지금은 헌책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을 ‘재인식’ 편집위원들이 걸고 넘어졌으며, 동시에 대통령의 역사인식을 비판한 사실들에 대해 기자들은 주목했던 것이다.
현 집권층이 과거 ‘해전사’의 지적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해서 ‘재인식’의 출간으로 이를 전도시키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해받기 마땅하다. 언론은 싸움을 더욱 붙여놓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좌우 이념 논쟁이 기대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자유부동적 지식인으로 이념을 반추하려는 필자는 언론의 즉자적 반응에 유감이며, 이러한 빌미를 편집위원 누군가 제공했을 것 같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좌우 이념논쟁 부추기는 보도
필자는 새 책의 출간을 보는 감회가 남다른데 단지 새 책과 헌 책에 모두 이름을 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1979년 헌 책 출간 당시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였던 필자는 이 판금서적을 숨어서 보며 지적 충격을 받았다. “이런 역사도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분의 말을 공감할 수 있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재인식’의 필자 상당수가 비슷한 느낌으로 ‘해전사’를 읽었을 것이며 이른바 반공적 시각으로부터 ‘교정’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이후 필자는 해방전후사를 전공으로 택해 ‘해전사’ 전6권 시리즈에 논문을 기고했다.
작년 ‘재인식’ 편집위원 중 한 분이 청탁했을 때 필자는 새로 나올 책이 1989년에 발간이 완료된 ‘해전사’ 속편이며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응했다.
그런데 청탁 수락 직후 새 책은 헌 책과는 다른 시각으로 해방전후사를 조망하는 시도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며 그 후 출판사를 전전했다는 얘기를 듣고 과연 이 책이 뭐길래 출간되기도 전에 신문의 주목을 받고 출판사의 기피대상이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학문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선학의 가르침을 좌우명처럼 삼고 있었던 터라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2006년 2월 1일 유력 일간지 1면 머릿 기사에서 ‘뉴라이트판 해전사가 나온다’는 정치적 보도가 나와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곧 편집위원 중 대표자가 나서서 정정보도를 이끌어 냈다.
그 분은 “우리 책이 어떤 이념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한국현대사 연구의 업적을 좀더 넓은 독자들에게 소개하여 역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하게 보려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필자들에게 회람하기도 했다. ‘해전사’의 역사해석을 우려하는 이유는 그것이 좌파적이기 때문이 아니며 ‘재인식’이 우파적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발간 직후 주요 신문의 반응은 ‘우파의 교과서가 출간되었다’는 식의 정치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새 책의 필진들이 읽고 배웠음직한 선배들의 업적을 ‘좌파적 편향’으로 치부해 버리는 분석도 횡행했다.
‘해전사’가 민족과 혁명 두개의 코드를 주축으로 썼다든지, 일국사적 관점을 견지했다는 단정적 평가는 6권 총 58편의 논문을 면밀히 읽어본 독자에게는 지나친 단순화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가장 많이 팔렸던 제1권의 경우는 일종의 비판적 계몽서로서 민중혁명론과는 거리가 있다.
필자는 우리 역사를 복합적, 가변적으로 볼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상대 적대시하면 학문발전 요원
70년대와 80년대 역사의 산물인 ‘해전사’에 대한 인식도 역시 다층적이며 다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어떨까? 그래야 ‘재인식’에 실린 다원적 평가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현대사 연구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정치권이 그러는 것처럼 학계에서도 학문적 지향이 다소 다른 상대방을 좌익이니 수구니라 하며 일방적으로 규정하면서 반목하고 적대시한다면 대화와 의사소통에 의한 학문 발전은 요원하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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