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과 정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일까?
일부 정치학자들은 두 사람만 있어도 그 사이에는‘정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두 사람만의 관계라 하더라도 어느 한 사람이 더 영향력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영향력 하에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 곳곳서 표출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점심을 함께 한다고 하자. 무엇을 먹을지 누가 정하게 되는가? 대부분 돈 내는 사람이다. 점심값을 내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또는 두 사람이 상하관계일 경우는 보통 윗사람이 정한다. 윗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점심 한 끼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결정에도 ‘정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정치’는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인간관계’를 말한다. 관계란 두 사람 이상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한 사람만으로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혼자 살 수 없는,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인간은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치적 동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인 정치에서 권력자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여 왔는가? 고대 씨족이나 부족사회에서 족장의 지위는 이웃 부족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적군의 머리를 가장 많이 노획해 온 용감한 인물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관습은 수천 년간 인류사회에 통용되었다.
세계사에 등장하는 19세기 이전의 주요인물 대부분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전쟁영웅들이다. 다시 말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절에는 군대를 장악한 탁월한 무장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러한 인류사회의 오랜 관습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선거를 통해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의민주제도가 확립되면서이다. 과거 혈연으로 세습되었던 최고정치권력자의 자리가 유권자인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게 된 것이다. 이른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에 기초한 민주적 정치제도였다.
이러한 민주적 제도에서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제시하는 정책과 약속을 믿고 그들을 지지함으로써 일정기간 정치권력을 위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권력을 위임한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이 세계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나 전체주의 체제에서 민주적 체제로 이행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원조격인 국가들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정치권력에 대한 불평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믿고 맡겼는데 진행되는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는 정치학자들이 ‘선거민주주의’라고 정의하는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 의미는 선거는 민주적 절차와 방식에 의해 치러지지만 선거의 결과 정치권력을 위임받은 지도자들이 민주적인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의 제기도 만만치 않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참여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참여의 범위와 현실적 방법의 강구라는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대의민주제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간단해 질 것이다.
서경교<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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