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복잡한 원리에 따라 운동하는 사물과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비교적 단순한 것에 대해서도 일면만을 보고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편협하단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착각을 굳게 믿고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순간 관계는 순탄할 수 없고,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강자일수록 약자의 눈으로
최근에 변론을 맡았던 한 사건도 이런 착각이 편견으로 굳어져 갈등을 일으킨 전형적인 사례이다. 만취 상태로 주저앉아 있는 젊은 여자를 함께 술을 마신 남자가 일으켜 세워주다가 사건이 발생했다.
남자는 여자의 앞에서 양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연히 남자의 얼굴은 여자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 그때 여자는 가슴을 만지고 키스를 하려는 것으로 알고 손을 뿌리치다가 넘어져 머리가 깨지는 상해를 입었다.
여자는 남자를 강제추행치상죄로 고소하였다. 착각에 믿음이 더해지는 순간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술에 취하면 사고가 단순해지고, 어린아이처럼 모든 상황을 자기 위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러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기 쉽다. 술에 의한 물리적, 화학적 작용으로 사고가 편협해지는 경우이다.
의식적 작용에 의한 경우도 있다. 어느 글에서 본 심리실험에 따르면, 30명에게 패스 횟수를 확인하라는 문제를 주고 농구 동영상을 보여준 후 전혀 엉뚱하게 코트에서 고릴라를 보았느냐고 질문한 결과 단 2명만이 본 것으로 확인되었단다.
28명은 농구공만 쫓다가 코트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어가는 그 큰 고릴라를 보지도 못한 것이다. 의식작용에 의해 사람의 눈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편견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역지사지(易之思之)이다. 내가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에만 보다 객관적일 수 있고, 세상의 후미진 곳까지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다.
사회적 강자일수록 약자의 시각에서 역지사지할 줄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해진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강자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불편함이 적어서 더욱 편견을 가지기 쉽고, 강자의 편견은 약자를 불행하게 한다.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에서 돈과 사회적 지위,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지사지일 것이다.
정치권에서 대권과 자치단체장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모두가 권력을 통해 강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경력과 공약을 제시하며 자신이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를 강변하고, 평소와 달리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공약은 진심으로 약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눈앞의 이해관계를 자극하여 단순히 표를 모으는 수단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후보자는 약자위한 진정성 갖춰야
선거 때만 되면 쏟아지는 홍보물과 거리선전, 별 차이도 없이 남발되는 공약의 홍수 속에서 유권자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거기에 흑색선전까지 겹치면 유권자는 투표소를 외면하고 차라리 산으로 들로 나가며 냉소를 던지게 된다.
권력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역지사지라면 후보자는 공약 남발보다는 자신이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근거와 그에 부합하는 경력을 내세움으로써 스스로 편협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이 진정 역지사지의 결과인지 여부를 꿰뚫어볼 수 있는 현명한 눈을 갖추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송호창<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p>법무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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