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을 ‘주머니 속의 송곳’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한 신문에서 반 장관의 됨됨이에 관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다. 송곳은 어느 주머니에 넣어도 비집고 나오게 마련이다. 인재도 이처럼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고 중용되는 게 세상 이치다.
정부가 14일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반기문 외교부장관을 결정,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이번 결정은 현명했다. 까닭은 반기문이란 걸출한 후보가 있고, 연말로 임기가 끝나는 코피 아난 현 유엔 사무총장도 자신의 후임은 “대륙별 순환원칙에 따라 아시아지역이 순리”라고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이변이 없는 한 ‘반기문 카드‘는 승산이 충분하다. 아직 시간이 있어 어떤 인사들이 돌출할지 모르나 이미 태국의 수라키앗 부수상(전 외상)이 아세안을 등에 없고 출마를 선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교라고는 외상 경험밖에 없고 나이도 40대라는 사실로 미루어 그가 살아온 40년간을 주로 유엔 무대 등에서 직업외교관 생활을 해온 반 장관엔 모든 면에서 족탈불급이다.
유엔은 회원국만 191개국이다. 전 세계를 망라한 거대한 집단안보기구다. 세계는 냉전 종식 후에도 지역분쟁과 대량파괴무기(WMD)확산 및 테러리즘의 증대로 영일이 없다.
특히 세계는 국가간 빈부격차, 인종학살 등 대규모 인권유린사태, 에이즈와 조류인플루엔자, 사스(SARS) 등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돼 있다. 이런 범세계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의 다수 회원국들은 지금 CEO적 사무총장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또 차기 총장이 유엔의 무력감을 떨쳐내고 개혁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유엔이 당면한 현안의 효과적인 대처에 실패한 반작용일 터다.
가뜩이나 대 이라크 석유-식량(oil-for-food)프로그램 비리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마저 크게 잃었다. 많은 회원국들이 차기 총장은 복잡한 21세기형 국제현안을 다룰 수 있는 외교ㆍ정치적 역량을 겸비할 것을 주문하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흐름으로 볼 때 ‘반기문 카드’는 적확했다. 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유엔의 지원으로 성공적으로 일어선 국가가 이제 그 묵은 빚을 갚으려는 뜻이다.
그들의 지원으로 나라를 세웠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단시간에 성공적으로 달성한 사례가 한국 외에 또 있는가. 특히 우리는 민감한 북핵문제 등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에 성공해 가고 있다. 평화와 안보, 개발, 인권 민주주의라는 유엔의 3대 목표를 이상적으로 달성한 이제 유엔의 최고수석행정직인 사무총장으로 기여하려는 것이다.
유엔헌장은 사무총장의 선출을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3분의 2인 9개국 이상의 지지를 얻은 인사를 총회가 투표없이 승인토록 규정하고 있다. 단 5대 강국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한다.
‘반기문 카드’가 승산을 갖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는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국가로부터도 미운털이 없는 국제신사다. 외교무대에서 설령 이견이 있을 때에도 항상 미소로 상대를 설득해온 전형적 직업외교관으로 꼽힌다.
유엔의 수장 진출은 개인적인 영광이자 자국 국가브랜드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버마(현 미얀마)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1962년부터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우탄트 제3대 총장이다.
구 버마의 주미대사와 유엔대사를 지냈던 그는 61년 다그 함마슐트 총장의 갑작스런 항공기 추락사망사고로 임시 총장을 맡았다가 당시 냉전의 와중에서 미ㆍ소의 절충으로 이듬해 정식으로 취임한, 아시아지역에서는 첫 사무총장이었다.
이제 냉전도 사라졌다. 유엔은 능력과 자질을 겸비한 사무총장을 찾고 있다. 우리는 반기문 장관이 유엔이 바라는 바로 그 수장의 적임자임을 확신한다.
남북한의 91년 동시 가입 이래 우리는 2001년 9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총회 의장직도 맡았다. 그때 반 장관은 한승수 의장의 비서실장이었다. 현장에서 9ㆍ11테러 직후 테러리즘에 대한 유엔 차원의 제반 대응조치를 조율한 소중한 경험도 했다. 그의 당선은 곧 대한민국 브랜드를 세계에 드높이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조용히 성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진환<전 한국일보 주필ㆍ외교통상부 업무평가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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