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대학의 교무과장으로 재직하던 안모(56)씨는 2004년 같은 학교 직원에게 거액의 빚보증을 섰다가 고스란히 빚을 떠안게 됐다. 믿었던 동료가 달아난 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안씨는 집 근처 운동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사는 오모(50)씨는 카드빚에 시달리다 아들까지 군대에 보내야 했다. 돌려막기를 하다 빚은 점점 불어나 1억원이나 됐고, 대학원생이던 아들은 이라크 파병을 지원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곽모씨(55ㆍ여)씨는 보증을 잘못 섰다 5억원의 채무를 갚지 못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당뇨까지 생겼다.
빚 독촉에 시달려 자살하고 병에 걸리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심지어 아들까지 이라크 파병 지원을 하고…. 상식을 벗어난 채권추심과 빚보증의 피해 사례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법은 서민의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좀 달라질 것 같다. 법무부가 보증으로 뜻밖의 경제적 피해를 입거나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해 주거 불안을 겪는 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법ㆍ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이 달 중 발족되는 ‘서민법제 개선 추진단’은 서민의 현실과 떨어져 있는 법과 제도를 고쳐 서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선 시행할 수 있는 몇 가지 안도 발표됐다.
법무부는 채무자의 능력을 믿고 보증을 섰다가 빚을 떠안게 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채무자의 금융기관 채무현황을 보증인이 미리 알 수 있도록 금융기관의 사전 고지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보증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보증 관련은 법무부 소관 법률이어서 올해 안에 법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법무부 설명이다.
법무부는 채권자가 야간에 보증인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 수면을 방해하거나 직장에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모욕을 주는 등 재산적 부담 이상의 고통을 주면 사법처리를 할 수 있도록 가칭 ‘보증인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이밖에 임차인의 주거불안을 가져온 임대보증금 회수 문제, 농민을 울리는 ‘밭떼기’ 같은 불공정 계약 관행도 대대적으로 정비된다.
임대차기간이 지나도 새로운 임차인이 나타날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사례를 막기 위해 주택임대인이 보험에 가입해 보증금 반환을 보장하도록 하는 보험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또 농산물 시세가 폭등했을 때 대금증액 청구권을 인정하고 계약금 비율을 법으로 정하면 ‘밭떼기’ 거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법무부는 기대하고 있다.
법무부는 타 부처 소관 사항은 소관 부처에 법령 정비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회양극화로 인한 부작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 민생 안정을 위한 법제정비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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