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공부를 점점 잘 하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해 사법고시 최종 합격자 결과를 보면, 여성이 수석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여성비율이 전체의 32%를 넘었다. 법무부는 사상 최고치라고 밝혔다. 의사국가시험에서도 여성의 비율은 31.8%였다. 사상 처음 30%를 넘었다고 한다. 외무고등고시에서는 52.6%로 남자보다 많았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점점 공부를 못하고 있다.’ 국가고시 등 성인들의 경쟁 결과는 작은 상징에 불과할 뿐, 일선 학교 등 청소년 교육의 현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아들을 둔 부모가 고개를 숙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공부에 있어서 여자가 우월해지고 남자가 열등해지는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사정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추세다. 이 책은 독일인이 쓴 책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교육제도를 가진 독일에서도 큰 고민인 모양이다.
저자인 카르트 뮐러 발데는 독일 유명 방송사에서 메인 앵커를 지낸 여성 저널리스트이다. 저널리스트답게 현실에서 문제점을 찾았다. 옆집 여자아이에 비해 공부를 못하는 자기 아들이 문제였다. 알아보니 아들을 둔 부모의 고민이 비슷했다. 발로 뛰어 이유를 찾았다.
저자가 주로 관심을 보인 것은 ‘독서’이다. 공부법의 독일식 왕도는 ‘독서’인 듯하다. 그래서 “이제 책 그만 읽고 학원가라”는 이야기가 당연시 되는 우리의 교육풍토와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학생이 점점 열등해지는 이유를 공감하기에는 충분하다.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에 비해 현저하게 책을 읽지 않는다. 2000년 OECD국가 남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독서가 취미’라고 대답한 여학생은 45%인 반면, 남학생은 25%에 그치고 있다. 왜 남자는 책을 읽지 않을까.
저자는 우선 성적정체성에서 단서를 찾는다. ‘남자의 세계’에서 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글을 깨칠 나이의 저학년 남학생은 의도적으로 엄마를 벗어나려 한다. 책을 읽어주며 잠을 재우던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공생적 근친상간으로 파악해 기피한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는 대신 컴퓨터 게임 같은 다른 매체에 집착한다.
어느 조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4배나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샌님처럼 책을 읽느니,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남자다움’이 더욱 큰 유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가 읽는 책, 책을 읽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남자는 비연속적인 텍스트를 많이 읽는다. 그래서 그림이 없이 글자만 이어진 책을 읽는 능력이 여자보다 떨어진다.
반면 여자들은 소설 등 연속적인 텍스트를 좋아한다. 현재의 교육제도 안에서 학생에 대한 평가가 주로 어떤 텍스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조심스럽게 성별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교육을 제안한다. 가장 큰 틀은 ‘남학생에게도 지루하지 않은 독서 교육’이다. 독서가 문학이나 학문과 동일어가 아니며 지루한 노동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오락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고 ‘쿨한 책’, 판타지나 SF 등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말려야 할 책’도 과감하게 권하라는 것이다. 막무가내 독서를 통해서라도 책을 통한 정신적 공간이 만들어지면 다른 종류의 책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해석하자면 “만화 본다고 꾸짖지 마라. 보다 보면 교과서도 본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 카트린 뮐러 발데 지음, 추금환 옮김, 사회평론 간, 9,000원
●남자아이들에게 권할만한 책의 12가지 조건
1. 즐거움을 줘야 한다.
2. 쉬워야 한다.
3.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제공해야 한다.
4. 아이디어가 새로워야 한다.
5. 현실과 상관없더라도 전문지식을 제공해야 한다.
6. 대화와 토론의 소재를 제공해야 한다.
7. 짧아야 한다.
8. 표지가 멋있어야 한다.
9. 글자가 작으면 안 된다.
10. 스토리가 두 개의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11. 독자보다 수준이 ‘한 수 위’여야 한다.
12. 이야기가 어른의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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