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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맹국들] (6) 일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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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맹국들] (6) 일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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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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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반환운동

오키나와(沖繩)는 분명히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열대 기후에 푸른 산호빛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이 천혜의 관광지는 조금만 주의깊게 둘러보면 구석구석 군사 기지의 철조망이 드리워진 ‘미군기지의 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주일미군기지 재편 작업과 관련해 주목받았던 나고(名護) 시장선거가 공표된 지난달 15일 오키나와 섬을 찾았다.

나하(那覇) 공항을 나서자 곧 바로 왼쪽에 미 육군 나하 군항만시설이 보였다.

여기서 북쪽으로 10㎞정도 가면 유명한 미 해병대의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이 자리잡고 있다. 기노완(宜野灣)시 중심부에 시 총면적(15.9㎢)의 4분의 1 크기인 이 비행장이 왜 미군기지 반환 운동의 상징이 됐는지 고개가 끄떡여 졌다.

후텐마를 지나면 캠프 포스터, 더 가면 가데나(嘉手納) 비행장이 나오는 등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섬의 남과 북을 가로지르며 촘촘히 널려져 있었다.

전국토의 0.6% 밖에 되지 않는 이 섬에 주일미군기지의 75%가 집중적으로 주둔한 가혹한 현실이 오키나와 주민들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

후텐마 비행장 이전처인 나고시에서 벌어지는 선거인 탓인지 오키나와 전역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야마톤츄(본토 일본인)가 이번에 후텐마 이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맑고 친절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가슴 속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차별과 무시에 대한 원망이 멍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같은 민심때문인지 나고 시장 선거에 나선 세 후보는 한결같이 미일 정부가 합의한 ‘캠프 슈와브 연안안’을 반대한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 결과 여당이 추천한 시마부쿠로 요시카즈(島袋吉和ㆍ59)씨가 새 시장으로 당선됐는데, 그는 이나미에 게이이치(稻嶺惠一) 오키나와현 지사와 함께 ‘정부안 수용 불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음날인 16일 나하 시내의 사무실에서 만난 히가 미키오(比嘉幹郞ㆍ75) ‘미일지위협정개정을 실현하는 NGO’ 공동대표는 “오키나와는 지금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마그마의 상태”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주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기지재편을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 미국이 오키나와에 대해서는 배려와 반성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서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류큐(琉球)대 교수와 오키나와현 부지사를 역임한 대표적인 ‘우치난츄(오키나와인)’에게서 나온 비판 발언이라는 점에서 인상이 깊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미일동맹과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중요성을 인정해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소장파 학자인 다카라 구라요시(高良倉吉) 류큐대 교수도 “가장 큰 문제는 오키나와 현민에게 성의있는 설명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라고 비판하는 등 오키나와 주민 대다수가 현재 미일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일미군기지재편 계획에 부정적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미국과 합의한 기지재편을 강행한다는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키나와에 대한 막대한 경제적 지원 등 ‘당근과 채찍’으로 밀어붙이겠다는 태세이다. 그러나 어떠한 ‘당근’이 주어지더라도 오키나와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거리지 못한다면 주일미군기지재편 작업은 심각한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는 생각이 이번 르포의 결론처럼 떠올랐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 오키나와大 아라사키 교수 인터뷰

오키나와(沖繩)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존경 받는 아라사키 모리테루(新崎盛暉ㆍ70ㆍ사진) 오키나와대 교수는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곳”이라고 설명했다.

주일미군기지 재편문제로 오키나와 지역 사회가 다시 술렁이기 시작한 지난달 16일 나하(那覇)시 오키나와대 연구실에서 아라사키 교수를 만났다.

-일본에서 오키나와는 어떤 존재인가.

“평화를 사랑하는 비무장의 류큐(琉球)왕국은 17세기 초 사쓰마(薩摩)번의 시마즈(島津)씨에 의해 점령돼 혹독한 수탈의 대상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투가 벌어지는 등 본토방위의 희생양이 됐으며, 대일강화조약 이후에는 일본에서 분리돼 미군 지배를 받았다. 일본에 반환된 뒤에도 ‘군사기지의 섬’으로서 고통받고 있다. 오키나와가 체험하고 있는 역사나 현실은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상당히 다르다.”

-오키나와 문제의 키워드는 ‘희생’과 ‘차별’‘부담’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적인 해결 방안은?

“오키나와인들에게 전후(戰後)는 미군기지와 싸워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군 기지를 철수하거나, 없애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안전보장에 커다란 역할을 해 온 미일동맹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가.

“내 개인적인 입장은 그렇다. 미일동맹은 기본적으로 미국 세계전략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경제력이 커지면서 동맹 안에서 일본 역할이 커졌다. 오키나와는 미일동맹, 소위 미일안보체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왔다. 최근 오키나와의 기지 부담을 줄인다며 이런저런 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군 필요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내 인식이다.”

-오키나와인들은 독립주의자에서부터 현실주의자까지 다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이 많을 지 모른다. 그러나 미일동맹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오키나와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그런 생각과 미군기지 철수는 연결돼 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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