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가 개봉 45일만인 11일 ‘꿈의 1,000만 관객’을 돌파한다. 2004년 ‘실미도’(1,108만명)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명)에 이어 세번째 기록이다. 매일 7만명 이상이 관람중인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 영화 사상 최대 흥행작이 될 가능성도 있다.
‘왕의 남자’는 비교적 적은 비용(44억원)을 들였지만 관객들이 저마다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다층적 이야기 구조로 흥행에 성공, 스크린쿼터 축소 위기에 직면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왕의 남자’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개봉관을 독차지한 뒤 초반 세 몰이를 하는 최근 영화계의 ‘대작 증후군’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44억원. ‘실미도’(82억원)와 ‘태극기…’(147억원)에 비해 한참 뒤처지고, 지난해 12월 개봉했던 ‘태풍’(제작비 150억원)의 마케팅비용(50억원)에도 못미친다. 첫 주 개봉 스크린 수도 ‘태극기…’가 452개, ‘실미도’가 325개였던데 비해 ‘왕의 남자’는 256개에 불과했다.
흥행 여부의 제일 척도인 스타 배우도 없다. 장르도 관객 동원에 한계가 있는 사극(史劇)이면서, 민감한 사회 문제인 동성애를 소재로 다뤄 흥행성은 물론 대중성조차 확보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준기가 개봉 직전 ‘깜짝 스타’가 될 때까지 흥행의 열쇠를 쥔 10대, 20대를 유인할 수 있는 요인도 없었다.
기존 초대형 흥행작과의 공통점은 역사물이라는 점이 유일하다. 하지만 ‘과거사 규명’(실미도), ‘남북문제’(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인화성이 강한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 조차 “영화는 좋은데, 흥행에는 약점이 많아 내부적으로 300만 관객 정도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런 약점들을 딛고 국민 네 명중 한 명을 웃기고,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최고권력자인 연산군과 저자거리의 광대들이 펼쳐내는 다층적 이야기 구조는 여러 갈래의 여운을 길고도 짙게 남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절묘한 결합으로 세대간 경계도 무너뜨렸다. 영화평론가 김영진(41)씨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케 한 영화다. 흥행은 돈으로 만든 스펙터클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교훈을 충무로에 던졌다”고 평했다.
‘왕의 남자’는 서사를 어떻게 다듬느냐에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달려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반발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여러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박재현(31) MK픽처스 마케팅실 팀장은 “한국영화의 비용은 계속 느는데 시장은 한계에 달했다”며 “‘왕의 남자’는 저비용 고효율의 모범 답안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왕의 남자’는 9일 개막한 제56회 베를린영화제 필름마켓에 진출해 세계 시장도 노린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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