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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1,000만 돌파/ 7인7색 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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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1,000만 돌파/ 7인7색 감상기

입력
2006.02.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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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는 예술과 정치, 사랑 등 많은 이야기를 담았지만 어느 하나에 깊이 천착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관객에게 자유롭게 느끼고 해석하는 색다른 재미를 줬고, 1,000만 동원의 원동력이 됐다. 7인7색의 ‘왕의 남자’ 감상기를 들어본다.

<질문> ①나는 이렇게 봤다(200자평) ②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③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 신경숙 / 소설가

① 영상은 화려하지만 이야기가 따라가지 못해 기우는 영화가 많은데, 서사가 꽉 짜여있어 화면의 빈 틈까지 메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가라 그런지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야기를 몰아가거나 억지로 꾸미지 않고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도 매력적이다. 모든 연기자들이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냈고, 그것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화면을 꽉 채웠다.

② 장생과 공길, 녹수, 그리고 육갑 형제까지 다 좋았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연산(정진영)이다. 폭군이란 이미지 안에 숨겨진 내면을 잘 드러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렸다.

③ 장생과 공길이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겠다는 말을 주고 받는 장면. 사냥놀이 장면도 인상적이다. 저예산인 탓인지 궁중 신이 대감집 정도로 보이게 빈약하게 그려진 것은 아쉬웠다.

● 조셉 윤 / 주한미국대사관 공사참사관

①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았다. 스토리가 정교하고 세련됐다. 한마디로 유치하지 않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조선시대 궁궐 안팎의 삶을 모두 보여준 것도 흥미롭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너무 한국적이고 감정에 치우쳐 외국인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반면, 이 작품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다뤄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꽤 히트를 칠 수 있을 것 같다.

② 장생(감우성). 삶에 대한 뚜렷한 원칙이 있고, 그걸 지키려 애쓰며 살아가고,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어느 사회, 어느 문화에서 보더라도 영웅이다.

③ 연산이 어머니의 죽음을 빗댄 광대들의 연극을 보다가 광기에 휩싸여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선왕의 후궁들을 죽이는 장면.

● 이병훈 / 드라마 대장금’ ‘서동요’ PD

① 작품성 있고 메시지도 고급스럽지만, 솔직히 ‘재미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화면상으로는 감정 이입이 어려워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탈춤이나 극중극이 등장하고, 무거운 주제를 쉽지 않게 다뤘는데도 1,000만이 들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영화는 절대 하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웃음). 대중이 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② 공길(이준기). 약자인 공길이 폭군 연산의 고독과 괴로움, 광기까지 다 이해하고 품어 안는 모습은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공길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빚어낸 데서 감독의 역량이 가장 빛난다.

③ 연산과 공길이 그림자 인형 놀이 등을 하며 노는 장면. 가장 강한 자의 고독과 가장 약한 자의 매력이 절묘하게 통했다고 할까.

● 박문화 / LG전자 이동통신사업본부 사장

① 수차례 영화, 소설화 됐던 연산군 이야기에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해 연산군의 비극을 새롭게 다루고 있다. 남성간 동성애를 축으로 한 이야기 전개도 전혀 색다른 맛을 낸다. 동성애는 우리 세대에는 금기시됐던 소재라 약간의 거부감도 들었지만, 탄탄한 구성 덕분에 가벼운 긴장감과 함께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세상의 중심임을 느끼게 했다.

② 장생. 부조리한 삶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비록 눈을 멀게 하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했지만 끝까지 그 의지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③ 장생이 부채를 던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 줄타는 이에게 몸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인 부채를 내던지는 것은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으로 비상하려는 의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 배금자 / 변호사

① 시대는 옛날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잘 빚어냄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해 바로 우리 곁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조선시대에도 동성애자가 있었다는 설정도 재미있고 동성애에 관한 우리 사회의 단단한 껍질을 깨게 해준 것 같다. 작가이자 감독이고, 배우, 소리꾼, 춤꾼이기도 한 종합예술인으로서의 광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값진 경험이다.

② 장생. 녹수의 모함으로 궁지에 몰린 공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누명을 쓰고 결국 눈까지 멀게 된 그가 줄을 타며 자신의 온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모습이 멋지다.

③ 광대들이 궁 안에서 세태를 풍자하며 노는 장면. 광대라는 직업을 다시 보게 했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광대놀이는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 주철환 / 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부 교수

① 권력을 쥔 자도, 걸쭉한 농담을 풀어놓는 광대들도, 왕을 노리개 삼은 요부도 다 불쌍한 존재다. 영화는 그런 인간들이 서로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게 인생 아닌가, 하고 말하며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잊고 살았던 삶의 의미, 연민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에 걸맞게 기발한 상상력과 탄탄한 이야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잘 어우러졌다.

② 공길. ‘왕의 남자’가 곧 공길 아닌가. 신인배우 이준기의 연기가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길의 이미지에 어울렸고 공길이 처한 상황을 잘 소화했다.

③ 역시 마지막 장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물구나무 선 공길이 가랑이 사이로 연산을 보는 장면에서 거꾸로 본 최고 권력자의 표정, 그를 바라보는 공길의 묘한 표정도 인상적이다.

● 낸시 랭(27) / 팝 아티스트

① 직업이 직업인지라 화면의 색감 등 시각적 아름다움에 먼저 필이 꽂혔다. 터부시되면서도 호기심을 끄는 동성애를 거부감 없이 녹여낸 것도 좋았다. 흔히 지적이고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현대미술도 사실 한 판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광대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대의 정치와 문화를 마음껏 조롱하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생 패거리의 종횡무진에 통쾌함을 느꼈다.

② 장생.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자리도 다르지만, 진정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봤다고 할까. 자기만의 방식으로 권력자까지 갖고 노는 그 배짱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③ 왕 앞에서 목숨을 걸고 첫 놀이판을 벌이는 장면. 왕은 웃지 않고 육갑 형제는 겁에 질린 상황에서 장생 혼자 발악하듯 공연을 펼치는 모습,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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