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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디지털 치매' 아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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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디지털 치매' 아니십니까?

입력
2006.02.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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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개월째인 회사원 신모(33)씨는 지난 설에 처가가 있는 서울에 갔다가 ‘미아’가 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차에 장착한 네비게이션(navigation) 장치가 갑자기 작동을 멈춰 버린 것이다.

“순간 앞이 캄캄하더라구요. 열 번도 넘게 처가에 갔지만, 그 전엔 네비게이션 장치가 알려주는 대로 운전해온 터라 가는 길을 기억해 둘 생각은 전혀 못했죠.”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로 식은 땀을 흘리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치매란 휴대폰 같은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 감퇴를 느끼는 현상.

버튼 하나만 누르면 기계 속에 저장된 정보가 바로 눈앞에 뜨니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데서 비롯된다. 디지털 시대의 신종 증후군인 셈이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디지털 치매를 신조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친정에 먼저 도착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길을 물어보려던 신씨. 그러나 낭패는 계속됐다. 휴대폰을 전주에 있는 자기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아내와 처가의 전화번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단축 번호 1번만 알았지 전화번호는 머리 속에서 뱅뱅 맴돌 뿐 도무지 안 떠오르더라구요.”

공중 전화를 찾은 그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무려 4번의 시도 끝에 아내와 통화에 성공, 식은 땀을 닦을 수 있었다. “그 때는 정말 완전히 바보가 된 것 같았다”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디지털 치매의 원인은 쓰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진화론의 용불용설(用不用說)로 설명이 가능하다. 전화 번호는 휴대폰이, 노래 가사는 노래방 기계가, 길은 네비게이션 장치가, 자료는 컴퓨터가 다 기억해 주고,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뽑아 쓸 수 있으니 애써 외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교사 김모(26ㆍ여)씨는 “학창 시절엔 가사를 줄줄 외우는 노래가 많았는데, 요즘엔 노래방 자막 없인 한 곡도 부르기 힘들다”고 말했다.

병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치매라는 말이 붙어 있을 뿐 크게 걱정할 것은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40대 후반의 대기업 부장인 김모씨는 최근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젊을 땐 사돈의 팔촌 전화번호까지 줄줄 외우는 기억력을 자랑했는데 요즘엔 금방 들은 것도 돌아서면 까먹고, 서류를 읽다가도 쉬운 한자에서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치매를 의심했지만 “지극히 정상”이라는 진단을 듣고서야 얼굴을 펼 수 있었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의 우종민 교수는 “이런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의 직장 남성들이 하루 1, 2명 정도 된다”며 “직장에서 컴퓨터가 자동으로 한자를 변환해 주고, 많은 용량의 정보를 저장해주다 보니 뇌의 집중력이 떨어져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의 신민섭 교수는 “이런 현상이 디지털 문화의 문제점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문명의 이기를 일부러 멀리 할 필요는 없다”며 “자주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권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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