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14일). 한때 얄팍한 상술의 표본으로 눈총 받았지만 이젠 연인들의 명절로 공식화된 느낌이다. 신난 건 연인들 보다 오히려 다양한 선물용품 제조업체들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특수에 별 재미를 못 봤다 하더라도 마지막 진검 승부의 기회가 다가오기 때문. 연인의 하트(heartㆍ마음)를 따뜻하게 채울 하트 아이템들이 비장의 무기다.
도대체 하트 마크가 사랑의 표식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어원연구가 박영수씨가 쓴 ‘103가지 어원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말로 풀이하면 ‘마음’이라는 비교적 얌전한 영어단어에 뜨거운 사랑과 정열이라는 질풍노도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은 중세시대라고 한다.
로마시대 포도주(예수의 피)를 담은 신성한 그릇 즉 성배를 뜻하는 기호였던 하트 마크가 마음이 가슴에 있다고 믿었던 중세 유럽인들의 사고와 맞물리면서 붉은 피 끓는 심장과 피를 담는 그릇 성배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겹치면서 사랑을 뜻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어쨌거나 사랑에 빠진 록스타의 눈에서 핑크빛 하트무늬가 튀어나오고(영화 ‘벨벳골드마인’), 은행고객을 사랑한다며 온몸으로 하트를 그리는(우리은행 광고) 시대, 연인들의 축일에 지름신이 하트무늬를 타고 강령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닌가.
하트 아이템에 가장 열성적인 것은 보석과 시계 브랜드다. 요즘엔 혼인용 뿐 아니라 공식 연인선언을 위해서도 커플링이 흔하게 쓰이는 터라 발렌타인 데이의 가장 인기아이템이 커플링이거나 커플시계가 된 지 오래다. 패션시계 브랜드 스와치는 심플한 흰색 다이얼 판에 선명한 빨강색 선으로 하트 무늬를 넣은 제품을 내놓았다. 밴드 역시 안쪽의 하트가 바깥쪽 큰 하트를 연결시키는 독특한 디자인.
밴드에는 작은 하트들이 참(charmㆍ부적)처럼 매달려 움직일 때마다 경쾌한 소리를 낸다. 폴리폴리에서는 발렌타인 하트 시계를 출시했다. 빨간색 가죽 밴드에 시계 프레임을 하트모양으로 디자인하고 밴드에는 ‘마음을 여는’ 열쇠를 달아놓은 깜찍한 디자인. 프레임은 큐빅이 자잘하게 박힌 것과 심플한 금속제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프랑스 주얼리브랜드 프레드는 하트를 주제로 한 ‘프리티 우먼’ 컬렉션 목걸이를 내놓았다. 자잘한 다이아몬드 테두리 안에 자수정 하트가 세팅된 것으로 따뜻함과 여성스러움을 표현한다.
화장품브랜드 겐조의 향수 ‘플라워 바이 겐조’는 디자이너 안토니오 마라스가 특별 디자인한 하트 브로치가 향수 미니어처와 함께 담긴 발렌타인 선물세트를 마련했으며 남성수제화 브랜드 벨루티는 가죽구두에 하트문양을 새겨주는 타투 서비스를 제공한다.
속옷업체의 하트사랑도 유별나다. 20대들에게 인기 있는 속옷브랜드 예스는 홀터넥 스타일에 하트 무늬를 넣어 발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커플속옷을 내놓았으며 원하는 경우 하트 무늬를 자수로 프린트 해준다.
또 섹시 코믹 컨셉의 커플속옷을 출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패션내의브랜드 임프레션은 하트모양 풍선이 그려진 여성용과 큐피트의 화살이 그려진 남성용 팬티에 각각 자석을 부착,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밖에도 하트 무늬는 동전지갑(구찌)으로, 핸드폰 고리로(코치), 캔버스백으로(이브생로랑)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젊은 연인들을 유혹한다. 주머니가 홀쭉한 청춘에겐 곤혹스러운 축일일지도 모르겠다. 발렌타인, 정말 하트(마음)만으로는 안되겠니?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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