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재학중이던 대학원생 표트르 유핌트세프(Pyotr Ufimtsev)는 박사논문으로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전자기파에 대한 논문을 썼다. 어려운 수학공식으로 가득찬 이 논문을 검토한 지도교수는 별 실용성이 없다고 생각해 겨우 통과점수(평균정도의, 낙제를 면할 학점)를 줬다. 그리고 그 논문은 유핌트세프의 책장에 있는 노트 꾸러미 속으로 던져졌다.
1961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게 된 유핌트세프는, 방치되었던 이 논문이 혹시라도 누군가의 관심을 받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발표를 하게 된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발표장은 썰렁하게 텅 비었고 아무도 이 논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1970년대 냉전시기에, 미국은 삼엄한 방어를 하는 러시아의 영공을 침투할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비행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유명 비행기 제조회사인 노드롭사와 록히드사에게 설계를 위탁하여, 우수한 설계를 뽑아 양산케 하는 경쟁 프로그램 해브 블루(Have Blue)를 비밀리에 발동시키게 된다. 당시 록히드사에서 이 비행기의 설계를 맡게된 팀은 초고속 정찰기인 SR-71 블랙 버드(Black Bird)의 설계로 유명한 스컹크 웍스(Skunk Works)였다.
어느 날 비행물체의 레이더 반사면적을 계산하는 데에 난관을 겪고있던 스컹크 웍스의 개발진은 은퇴한 기술자의 방문을 받았다.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전해들은 이 은퇴한 기술자는 자신이 예전에 다른 기술자에게 얼핏 전해들은 유핌트세프의 논문을 기억해내었고, 이를 개발진에게 들려주었다. 개발진은 부랴부랴 이 기술자를 찾아내어 논문의 제목과 수록된 논문집을 알아내었고, 비밀리에 캐나다를 통해 유핌트세프의 논문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후 번역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순간 개발진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은 일거에 해결됐다. 이로써 코소보 사태와 이라크 전쟁에서 맹활약을 펼친 F-117 나이트 호크, 세계 최초의 스텔스 전폭기가 탄생할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뉴스 속의 과학은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을 다루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뉴스(스텔스 전폭기)는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유핌트세프)이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짚어보고자 예를 든 것이다. 연일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장관 내정자들의 직함은 화려하기도 하다. 적어도 교수쯤은 되어야 명함을 내밀고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뉴스에 화려하게 등장하지는 않고 자신의 일에 묵묵히 정진하는 사람이 다수라고 믿는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재능은 이마에 붙은 직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컹크 웍스의 기술자들은 적성국의 무명 과학자의 이론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유핌트셰프는 1990년까지 구소련 과학원에서 책임 과학자로 재직하다 LA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로 초빙받아 현재까지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화까지 된 마당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께 감히 한 말씀 드린다. 대한민국이 아니면 외국에서라도,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그 노력을 알아주는 날이 있으리라고 말이다.
김주환 연세대 토목공학과 연구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