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인 고건 전 총리와 열린우리당 당권 후보인 김근태 상임고문이 8일 만나 은근한 눈빛을 교환했다.
김 고문은 그간 주장해온 범민주세력 대연합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고, 고 전 총리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우리는 주파수가 맞는다”는 말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만남은 김 고문이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고 전 총리의 강연장을 찾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고 전 총리는 ‘희망한국을 향한 리더십의 조건’이란 주제의 강연이 끝난 뒤 민주세력 대통합 참여의사를 묻는 참석자의 질문에 “통합과 상생, 협력의 정치로 가기 위해 범 민주세력 통합론은 원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고 전 총리는 그러나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입장을 밝히는 것은 옳지 않다”며“정치적 활동을 시작할 때 판단해야 할 일”이라고 더 이상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이에 김 고문은 발언권을 얻어 “우리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실질 대화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통합론은) 밀실에서 얘기할 문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고, 고 전 총리는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만남은 두 사람의 당면한 정치적 이해가 맞아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당권경쟁에 뛰어든 김 고문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고문에 비해 세 불리를 절감하고 있다. 더구나 2일 예비경선 이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판세 분석도 적지 않다. 이에 전세 역전을 위한 돌파구로 고 전 총리와의 연대 카드를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다는 관측이 많다.
즉, 이대로라면 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 전 총리나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과 연대를 통한 외연 확장이 불가피한데, 그러기 위해선 김 고문이 당 의장에 당선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당원 및 대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 고문은 대권 의지가 강해 경쟁자인 고 전 총리 등을 끌어들이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은근히 부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 전 총리 입장에서도 김 고문의 당내 약진이 나쁠 게 없다. 고 전 총리는 지방선거 이후 큰 틀의 정계개편을 기대하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 후 여당의 분열이 가속화할 경우 대선에서 야당을 이기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고, 이 경우 자연스레 고 전 총리가 유일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동영 고문보다는 김 고문이 당권을 장악하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고문이 당 의장으로 나선 지방선거에서 고 전 총리의 출신지역이기도 한 전북을 중심으로 호남 표가 결집되고, 강 전 장관 영입으로 수도권까지 지지세가 확산될 경우 고 전 총리의 역할공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력이 판이하고 궁극적으론 경쟁관계라는 점은 양측 제휴가 전술적 또는 국면타개를 위한 단기적 차원에 그칠 가능성도 암시하고 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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