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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교수, 4번째 '이상 문학전집'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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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교수, 4번째 '이상 문학전집' 펴내

입력
2006.02.0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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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문학사의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자, 그 문학 자체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평론가 장석주)로 평가받는 천재 작가 이상(李箱ㆍ1910~1937).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는 비의(秘意)의 ‘모던 보이’. 그의 문학전집이 김주현(40) 경북대 국문과 교수의 6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3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5만5,000원, 소명출판)

이상 문학전집은 이번이 4번째 출간이다. 문학평론가 임종국씨의 ‘이상 전집’(1956년, 태성사)과 이어령씨가 4권으로 묶은 판본이 있었고(1977~78, 갑인출판사), 89~93년 문학사상사판 ‘이상문학전집’(이승훈, 김윤식)이 있었다. 더러 이상의 사후에 발굴된 미발표 유고를 발굴해 수록하기도 했으나, 이들 전집 모두가 원전의 정본을 표방하며, 작품의 주석ㆍ주해를 새로이 교정하기 위한 작업의 성과였다.

김 교수의 판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 판본들이 놓쳤던 오기 및 해석상의 오류들에 대한 새로운 지적이다. 가령, 소설 ‘날개’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회탁의 거리’(“나는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비적…”)가 기존 판본들에 ‘희락의 거리’로 표기된 것을 발표 지면(조광, 1936.9)과의 대조를 통해 바로 잡았다. ‘회탁’(灰濁)은 ‘회색의 탁한’이라는 뜻이다.

또 소설 ‘지도의 암실’의 “앙뿌을르에 봉투를 씌워서 그 감소된 빛은…”이라는 문장에서 ‘앙뿌을르’의 의미를 기존 전집들이 ‘암페어’, ‘(주사)앰플’로 푼 데 반해 김 교수는 ‘전구’로 주석했다. ‘실화’(失火)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고리키의 ‘나드네’ 구슬픈 노래”라는 대목의 ‘나드네’가 ‘나그네’로 표기돼온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나드네’는 러시아어로 ‘밑바닥’이란 의미다.

또 이상의 유서처럼 읽히는 대표작 ‘종생기’(終生記)에서 이상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마지막 대목 “만이십육세와 삼십개월을 맞이하는 이상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의 ‘삼십개월’이 ‘삼개월’의 오식이며, 그래야만 이상의 나이와 작품 탈고 시기가 맞아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송해경’(宋海卿)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연재된 수필 ‘논단시감’과 ‘김해경’(金海慶)이라는 이름으로 된 ‘현대미술의 요람’ 등 기존 전집에서 이상의 글로 확정됐던 작품과 자필원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보다 철저한 연구를 통한 원전 확정 작업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원전 확정이 먼저 이뤄진 뒤 전집이 발간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그 반대로 이뤄져 전집의 오류가 연구의 오류로 이어졌다”며 “이번 작업은 그 악순환을 바로잡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작가 이상은 당대에도 그다지 친절한 작가는 아니었다. 시대를 앞서 산 거인의 문장을, 그것도 당대의 표기에 충실한 판본으로, 요즘의 일반 독자들이 읽기란 더더욱 불편할 수 있다.

(기사의 작품 인용부는 현대문 표기로 바꾼 것이다) 이번 전집 역시 연구자용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그 고통스러운 책 읽기에 보답할 만한 값어치를 지닌다.

그의 작품을 느리고 깊게 읽을 때,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페-지가 ?笭눴뻗?耭載〉紫偏扇눼蔑?‘날개’ 끝부분)는 문장 앞에서 독자들은, 나름의 삶에서 말소된 어떤 페이지를 ‘?笭눴뻗?dictionaryㆍ사전) 넘어가듯 번뜩’ 만나게 될지 모른다. 70여 년의 시간을 건너 그의 작품들이 다시 찾아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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