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의 2006년 국정연설이 발표된 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 가고 있다. 그 사이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분석한 한국의 언론과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의 관심이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언급에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국정연설의 행간을 읽어보면 북한 문제 이외에도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중요한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부분이다.
●부시의 선진에너지구상 주목
부시 대통령은 이른바 선진에너지구상(Advanced Energy Initiative)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이 선진에너지구상의 핵심은 미국의 가정과 산업의 에너지원, 그리고 자동차의 에너지원을 석유 이외의 것으로 다양화시키는 것으로 집약된다.
지구온난화의 방지를 위하여 석유 사용을 규제하자는 UN 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의 이행에 매우 소극적인 미국의 공화당 행정부가 이러한 에너지구상을 강조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차적으로는 반미 성향과 정정 불안이 고조되는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를 줄이려는 계획으로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발표된 같은 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만도 중동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도 세계가 석유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는데, 석유가가 현격히 떨어지면 중동의 전제국가들이 어쩔 수 없이 개혁 개방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선진에너지구상 속에 담겨 있는 미국의 차세대 에너지 표준(스탠더드) 경쟁 전략이다.
최근의 여러 가지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전 세계의 에너지 표준이 혁명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보인다. 사실, 유럽과 일본 등은 이미 교토의정서를 통하여 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규제하고, 새로운 대체에너지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의 경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 경쟁에 비교적 소극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에 유리한 대체에너지 기술 개발을 위하여 시간을 버는 전략을 취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미국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술이 확보될 때까지 시간을 벌다가 기술이 개발된 후 본격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술표준을 선점한 예가 있다.
1987년 CFC 배출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이 그것이다. 당시 우리에게 프레온 가스라는 냉매로 잘 알려진 CFC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몬트리올 의정서의 규제 대상이 되었는데 이를 바로 규제하게 되면 CFC산업의 최대 수혜자인 미국의 듀퐁 사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몬트리올 의정서의 이행을 지체하다가 이 회사가 연구개발을 통해 대체 냉매인 HCFC, HFC 등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자 입장을 바꾸어 곧바로 이 기술에 의한 새로운 냉매의 표준을 선점하게 된다.
●우리도 국가차원의 준비 필요
에너지 표준과 관련하여 이와 비슷한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재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연두교서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향후 약 200년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석탄의 청정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원자력, 태양 및 바람을 이용한 대체에너지 기술, 그리고 새로운 자동차의 동력원 기술 개발을 통하여 차세대 에너지 표준 경쟁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표준이 바뀌면 경제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우리는 석유가 영원히 세계의 에너지 표준이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력, 석탄, 석유로 에너지 표준이 변해 왔고 이 표준을 선점한 국가들이 과거의 패권국가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도 대체에너지 표준 경쟁을 위하여 면밀한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철저한 준비와 지원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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