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에 대한 풍자만화 몇 컷이 세상을 뒤집고 있다. 대사관이 불타고 신부가 살해되고, 이슬람권과 유럽간의 통상ㆍ외교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무슬림들의 과잉 반응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 만화를 게재했던 유럽 언론들도 종교적 신성성도 표현의 자유에서 예외일 수 없다며 이슬람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무지와 오만이 일부 무슬림들의 폭력을 불러온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다. 과연 이번 사태가 언론의 표현 자유와 종교적 가치 수호 사이에 벌어진 단순한 갈등의 측면일까?
이슬람교에서는 철저한 우상숭배 금지 원칙에 따라 마호메트를 형상화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슬람 역사 1,400년 동안 지켜왔던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그것이 깨어진 것이다. 성화와 성물을 인정하는 기독교나 불교의 그림이나 조각들에 대한 모독과는 그 차원이 매우 다르다. 존재하지도 않는 그림을 제멋대로 그리고 그것도 악마로 표현되었을 때, 그들은 신앙의 본질이 부정당하는 충격을 받는다. ‘14억 무슬림들에 대한 인격적 살인’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 신문이 마호메트를 경멸적으로 형상화하고 더욱이 그의 머리에 폭탄을 매달아 이슬람의 테러종교 이미지를 고조시킨 행위는 언론 자유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인간의 종교적 본성에 대한 도전, 나아가 1,400년 이슬람 역사와 문명 자체에 대한 도발적 파괴 행위로 보는 것이 현재 전세계 무슬림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일반적 정서이다.
더욱이 무슬림들은 이번 사태를 이슬람의 가치와 무슬림의 정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우발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덴마크 신문에 이 만평이 게재되었을 때는, 이슬람 세계의 큰 주목을 끌지 못했고 외교적 항의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유럽 언론들이 일제히 다시 이를 전재하여 전세계 무슬림들의 관심을 촉발시킴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었다. 이는 매우 의도적의고 계획된 음모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부 급진 무슬림들의 분노가 절제되지 못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이유이다.
물론 폭력을 자제하라는 목소리는 이슬람권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무슬림들이 입은 정신적 쇼크와 응어리는 1988년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사건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무슬림들의 폭력 대응과 과잉 반응은 오히려 이슬람에 대한 지구촌의 이미지를 악화시킬 뿐이다. 마호메트를 더욱 욕되게 한다는 비난도 경청해야 한다. 극단적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의사를 펴고, 그 막대한 오일달러를 이슬람문화를 알리는데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 더욱 지혜로운 방식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는 문화다양성이 기본 축이 되는 공존과 화해의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촌 최대 문화권인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표하지 않는 일부 유럽 언론의 태도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동시에 이슬람이 스스로의 노력과 행동을 통해 지구촌에 테러가 아닌 평화의 이미지를 심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ㆍ이슬람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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