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스파이스가 6집 음반 ‘봄봄’을 들고 돌아왔다.
어느덧 데뷔 11년. 한국 모던 록의 첫 장을 연 이들은 ‘사회를 향한 저항의 외침’이라는 록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청춘의 중얼거림’으로 변환하며 한국 가요사에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디밴드로 이름을 깊게 새겨넣었다. 그러나 델리 스파이는 “이제 시작일 뿐”이란다.
꾸미지 않은 감성을 때로는 호쾌한, 때로는 서정적인 선율에 실어 노래한 ‘봄봄’의 세 주인공, 김민규(35ㆍ보컬) 윤준호(36ㆍ베이스) 최재혁(31ㆍ드럼)을 메신저로 인터뷰 했다. 접선은 새벽 1시에 이뤄졌다.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한 세 남자의 수다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박선영님의 말: 이번 앨범에는 영화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이 많던데요.
최재혁님의 말: 타이틀곡 ‘미싱유’는 일본의 여류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을 읽고 썼어요. 떠나가버린 사람, 그리운 무언가, 되돌아가고픈 시간 등을 그렸는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만든 이누도 잇신 감독의 새 영화 ‘메종 드 히미코’의 뮤직비디오로도 쓰이게 됐죠.
윤준호님의 말: ‘꽃잎 날리는 길을 따라’의 가사는 ‘조제…’를 보고 썼어요.
박: 델리 스파이스의 힘 중 하나가 가사 같아요. 흔히 인디밴드들의 음악 중에는 ‘말달리자’ 식의 독특한 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델리는 ‘생활밀착형’에 가깝죠.
김민규님의 말: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작가는 슬픔을 팔아먹는 직업”이라고 한 문성근씨의 대사에 공감해요. 슬플 때는 곡이 술술 써져요. 마냥 즐거울 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든요.
박: 델리도 이제 슬슬 30대 중반을 넘어가는데, 세월이 음악에 많은 변화를 줬나요?
김: 20대 때는 꽤 공격적이었죠. 싫은 사람도 많았고. 기성세대에 가까워지면서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해간다고 할까…. 투덜거리기보다는 위로해줄 수 있는 가사를 쓰고 싶어요.
윤: 이제 장르나 스타일에서 많이 자유로워지는 듯해요. 장르보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 건지가 더 중요하죠.
박: 함께 활동했던 인디밴드들 중 남아 있는 팀이 거의 없는데.
김: 음악을 계속 한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슬픈 현실이기도 하죠. 간혹 공포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잔인하게 죽잖아요.
최: 그래도 지금은 봄날인 걸요. 내가 원해서 준비되면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예전엔 꿈 같은 얘기였잖아요.
김: 우리가 앨범 발매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권력인 거죠, 뮤직비즈니스의 생리에선…. 음악적 욕심으로 오버하지 않은 덕분인 것 같아요.
박: 3년간의 공백기에 김민규씨는 원맨 프로젝트 밴드 ‘스위트피’로 활동했고, 윤준호, 최재혁씨도 ‘오메가3’를 결성했는데, 앞으로도 각자의 프로젝트는 계속되나요?
최: ‘델리 계속 하는 거죠?’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과 비슷하겠죠. 프로젝트 활동에서 얻은 좋은 자극을 델리에 많이 반영해야죠.
박: 아직도 델리가 인디밴드라고 생각하세요?
김: 첫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 거 같아요. 공연에서 과격한 표현이나 야한 농담을 해도 소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시더라구요. 그냥 태생이 인디인 거죠.
윤: 바지라도 벗어야 바뀌려나. 흐흐.
박: 델리가 작곡 능력에 비해 연주력이 떨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저 정도면 나도 밴드 하겠다”는 희망을 심어줬다는 ‘의혹’이 있던데.
최: 미쳐미쳐.
윤: 저희가 재즈밴드인데 이 정도 연주만 선보인다면 문제가 있을 테지만 지금 델리 스타일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듯 싶네요.
김: 곡과 따로 떼어서 연주만 보는 건 무리가 있죠. 산울림 노래도 들어보면 튜닝도 제대로 안된 곡들이 있어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양희은씨가 “창완이 걔는 기타 줄도 안 맞추고 치더라”고 회고하더군요. 연주하긴 쉬워도 아무나 그런 곡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죠.
최: 탁월한 ‘테크니션과(科)’는 아닐지 모르지만 저희는 곡과 연주와 노래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김: 1990년대 얼터너티브 광풍이 없었다면 음악 못했을 거에요. 예전에 메탈씬을 돌이켜보면 내 연주는 말도 안 되는 연주니까. 고음도 안돼, 속주도 안돼, 다리도 짧아.
최: ㅎㅎㅎ. 고음, 속주, 다리…, 완전공감.
박: 신보에 대한 자평과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김: 첫 고음 시도란 점에서 ‘미싱 유’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라이브에선 좀 힘들지만.
최: 긴 공백과 여러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 만큼 많이 예뻐해 주고 싶어요. 제가 내밀기에 떳떳해서 남들이 뭐라 하든 좋습니다.
김: 저도 만족해요. 이번 앨범은 길게 보면 3기 델리의 시작 정도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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