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정이 다소 달라지긴 했어도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사 대부분은 여전히 수습기자를 뽑으면 우선 경찰서를 출입하며 사건기사 취재 보도를 익히게 한다.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을 육하원칙의 기사작성 원칙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게 기사로 처리하는 능력이야말로 제대로 된 기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기자 생활에서 익힌 기사쓰기 노하우는 나중에 정치, 경제, 국제, 심지어 문화 뉴스 취재 분야로 자리를 옮겨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정치판에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진다든지, 어떤 기업이 대규모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든지,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테러조직인 하마스가 집권당이 됐다든지 하는 뉴스가 발생하면 기자들은 ‘사건’의 요지를 감각적으로 금방 파악하고 요령 있게 기사를 처리한다.
언론은 축적된 사건뉴스 처리방식을 통해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뉴스를 마치 예상된 뉴스인 것처럼 차분하게 기사를 제작하는 조직능력을 갖추게 된다. 언론조직의 전문성과 경쟁력은 사건뉴스 처리 요령에 의해 좌우된다.
정치적 사건을 순간적으로 요약 정리하는 기자의 능력은 정치학자가 쉽게 흉내내지 못하고, 외국 뉴스통신사들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외신들을 매우 짧은 시간에 요지가 담긴 국제기사로 만드는 국제부 기자의 능력은 영어능력이 뛰어난 동시통역사라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사건뉴스 처리능력은 시간이 좀 흘러도 언론조직의 중요한 경쟁력 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하게 변하고 매체 경쟁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언론으로부터 사건뉴스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사회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뭔가 심층적인 정보를 언론이 전달해 주기를 바라고 있고, 또한 남의 사건이나 얘기가 아니라 나의 관심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뉴스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점점 뉴스를 떠나고 있다. 신문을 봐도 읽을거리가 많지 않고, 방송뉴스를 봐도 보고 들을 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외면을 당하기 시작하는 뉴스의 위기 현상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사건뉴스 처리방식에 대한 언론의 집착증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언론은 어떤 주제의 뉴스든 돌출적이고 갈등적인 내용과 표피적인 ‘사건’ 위주로 기사를 구성하는 습관적인 관행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언론에서 사건발생 사실 외에 분석이나 통찰, 지혜 같은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눈길을 주고 떠나버리고 만다.
최근의 몇 가지 언론보도를 보더라도 언론의 사건뉴스 처리틀(프레임)의 그늘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싸고 여야간 다툼이 벌어지자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시종일관 정파간 갈등 사건으로 다뤘다. 수백 건의 관련 기사를 훑어 봐도 사립학교법이나 사립학교의 문제점에 대한 정보나 분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보도도 사실상 언론이 사건기사 프레임에 스스로 발목이 잡힌 경우다. 애초에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을 보도할 때 생명과학에 관한 보도가 아니라 한국에서 세계적인 과학자가 탄생했다는 ‘사건’ 기사로 접근하면서 황 교수 개인을 영웅화하고 그의 업적을 신화화했다.
과학은 실종되고 사건만 있었던 언론 보도는 황 교수가 결국 큰 사고를 치는데 일조했고, 언론은 다시 황 교수 사건을 보도하느라 분주했다.
사건뉴스 프레임은 유명인들의 발언 가운데 일부 돌출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을 하나의 사건처럼 보도함으로써 발언자의 진의를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건뉴스의 가장 치명적인 함정은 외피에 집중하다 보니 사태의 구조와 본질을 갈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한국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던 외환위기에 관한 언론 보도다.
경제구조의 커다란 변동보다 외면적인 형상, 그리고 경제부처 관리들의 말에만 의존했던 언론들은 외환위기를 예측하고 경보음을 내는데 실패했다. 그 후 언론의 사정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외환위기 사태 같은 파동이 다시 찾아온다면 한국 언론의 사건뉴스 프레임망은 과연 경보음을 울릴 것인가.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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