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장기외유를 끝내고 그제 귀국했다. 대선자금 등과 관련한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던 지난해 9월 초 신병 치료 등을 이유로 출국한 지 정확히 5개월 만이다. 이 기간의 행적에 대해 이 회장은 “건강치료도 하고 약속한 사람도 만나고 요양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건강악화설’ ‘해외도피설’ 등 각종 추측과 소문이 나돌고 그룹 전체의 새해 경영환경도 불안했던 것에 비춰 볼 때, 국내 최대 기업군을 이끄는 그의 귀국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회장 입장에선 X파일의 대선자금 대목에 연루된 혐의를 벗었다 해도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수사가 계속되는 데다 에버랜드-삼성카드-삼성생명으로 연결되는 그룹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도 해소되지 않아 귀국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뉴욕 유학 중이던 막내딸의 돌연한 죽음에 따른 상심도 여전히 클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작년 1년간의 (삼성과 관련된) 소란’을 사과하며 “전적으로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한 만큼 삼성이 대내외 악재를 하루 빨리 이겨내고 더욱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 점에서 이 회장이 짧은 귀국 인터뷰에서 “국제경쟁이 하도 심해서 상품 1등 하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삼성이 국내에서 비대해져 느슨해진 것을 느끼지 못했으나 작년 중반 쯤이라도 느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어느 부분이 비대해졌고 느슨해졌는지는 차차 드러나겠지만, 신년사에서 ‘현실안주와 성과도취’를 경고하며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차제에 이 회장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자신과 삼성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책임있고 의연하게 대처해 과거의 낡은 관행과 의식을 확실하게 깨달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의 따뜻한 눈을 이끌어낼 수 있고, ‘삼성공화국’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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