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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아시아 문화 허브로] <10> 문화 강국이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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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아시아 문화 허브로] <10> 문화 강국이 선진국이다

입력
2006.02.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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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자 대기업 A사의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조성호(42ㆍ가명) 부장. 예전에는 비행기 옆 자리에 외국 사람이라도 앉을라치면 괜히 쑥스러워 눈 마주치기도 힘들었지만 요즘은 먼저 말 걸기를 기다려 줄 만큼 낯선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세계 어디서나 한국을 알고 한국문화를 접해본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두바이행 비행기에서 만난 이집트인과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겨울연가’와 한국문화 얘기를 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해외 거래선과의 비즈니스 미팅이나 친교 파티에서 이야기 거리가 없어서 서먹한 대화가 이어졌지만, 요즘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대화로 이어진다. 그는 “바로 이게 ‘문화의 힘’인 것 같다”며 “한류 덕분에 정말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남미 오지에서도 울려 퍼지는 ‘태권도’의 함성, 세계인 5명중 1명이 소유하고 있는 한국산 휴대폰, 그리고 아시아와 중동을 넘어 유럽 시장까지 넘보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이런 것들이 ‘한국’이라는 이름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킨다. 지난해 독일 시사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한국이 온다’는 특집기사에서 “한 번이라도 한국 휴대폰을 써보고 한국 영화를 본 일이 있다면 누구도 분단과 가난으로 고통 받던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떠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한국산 첨단 정보기술(IT) 제품과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들의 뇌리 속에 ‘한국=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심고 있다는 얘기다.

1980년대 초반 아프리카 토고에서 사업을 하다 지금은 베트남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연창수씨. 그는 “아프리카에 태권도가 알려지면서 한국 사람이 대접 받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미주와 아프리카 등에서 해외 선교에 나선 한국인들은 태권도를 내세워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제는 한국 드라마와 상품이 태권도의 뒤를 잇는 것 같다”며 “한국 드라마와 한국 상품을 체험해 본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미국ㆍ프랑스ㆍ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으로 인정해 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강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소프트 파워란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셉 나이(Joseph Nye)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한 국가의 경제력, 이념(이데올로기)과 문화적 영향력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반대의 개념은 ‘하드 파워’. 보통 군사력을 뜻한다.

소프트 파워의 요소는 1990년대에 냉전 체제가 끝나고 글로벌 경제가 본격 태동하면서 한 국가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냉전시대 미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소련연방이 이후 현저한 지위 격하를 겪은 까닭은 ‘하드 파워’만으로는 국가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어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엠마뉴엘 월러스타인 미국 뉴욕대 교수는 9ㆍ11 사태 이후 ‘미국의 패권 약화’ 및 ‘세계 지배 권력 누수’를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약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노암 촘스키 교수는 한발 더 나가 “GM, 코카콜라, 맥도널드처럼 미국적 생활 양식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번영했던 시기와 미국의 힘이 정점에 올랐던 시기는 일치한다”며 “최근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도전 받고 있는 현상은 (미국의) 문화적 영향력 쇠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결국 문화강국이 지구촌 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진정한 리더국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찍이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린 영화감독 임권택씨도 “문화강국이 선진국”이라고 단언한다. 1989년부터 해외 영화제에 활발하게 참가해 온 그는 “아무리 부자 나라가 되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적 힘이 없다면 선진국이 아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세계 10대 선진국 진입’을 외치기에 앞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를 바탕으로 ‘문화 허브’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문화를 인정 받지 못한 ‘경제 선진국’의 탑은 사상누각이다. 지난해 12월 산업정책연구원이 조사한 ‘30대 국가 브랜드가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2002년 9위 이후 3년 연속 하락해 13위를 기록했다. 산업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무역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국가 이미지에 대한 해외의 평가가 좋지 못했다”며 한류의 세계화와 같은 문화적 채널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 역시 “과거 우리나라가 저평가됐던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문화 없이 제품만 팔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류열풍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며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고 이류에서 일류로 본격적 도약하는 계기가 되도록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소장

“한국적인 것이 우리의 블루오션입니다”

구본형(52ㆍ사진)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은 한류를 바탕으로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경쟁력을 추구하자고 주장한다. 소위 ‘코리아니티(Coreanity) 경영’이다.

구 소장은 “코리아니티란 ‘한국성’(韓國性) 혹은 한국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유전자(DNA)”라고 정의한다. 이는 다수의 한국인이 공유한 문화적 동질성, 일상적 취향, 가치체계와 공유의식, 일반 정서 등 한국적인 것의 총체다. 그는 “한국인이 가진 문화적 차별성을 브랜드화하여 문화적 프리미엄을 얻어내는 것이 코리아니티 경영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세계화가 대세인 시점에서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구 소장은 외환위기 이후의 세월을 ‘잃어버린 8년’이라고 진단하면서 “한국이 (정체에서 벗어나) 지속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선진국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며 “이제 ‘추격’은 포기하고 ‘한국적 리더십’을 개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리아니티 경영의 성공 사례로 지난달 29일 타개한 백남준씨를 거론했다. 백남준씨는 서구 문명에 때묻지 않는 한국적 순수성을 간직한 채로 국제적 예술 세계에 뛰어들어, 서구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테크놀러지의 예술성과 조우하고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 비디오 아트를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도 ‘거북선’ ‘한국의 방’ ‘종로구’ ‘눈먼 부처’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한국적인 상상력을 아낌없이 펼쳐보였다.

이렇게 ‘한국적인 것을 보편화’하고 ‘세계적 보편성을 한국화’하는 통합 전략을 통해 자신만의 특화된 차별성을 일궈낸 것이 백남준의 성공 비결이라는 얘기다. 구 소장은 “미국 제품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독일제 상품에서는 ‘견고함’을, 일제에서는 ‘정교하고 섬세함’을 발견할 수 있듯이 한국 상품에서도 뭔가 한국적인 것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런 ‘문화적 브랜드’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오늘날 한류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는 이유는 ‘발전된 한류가 세계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구 소장은 1980년부터 20여년간 한국IBM에서 근무하면서 미국의 말콤 볼드리지(Malcolm Baldrige) 국가품질경영 모델을 IBM 아시아태평양 지사에 적용하는 국제 심사관으로 활동한 경영이론가다. 1992년에는 한국능률협회의 제1회 ‘경영혁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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