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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백남준 장례식 "깜짝 넥타이 절단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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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백남준 장례식 "깜짝 넥타이 절단 퍼포먼스"

입력
2006.02.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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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3시(현지시간), 고 백남준씨의 영결식이 거행된 뉴욕의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 재클린 케네디, 존 레넌의 장례도 치렀다는 이 유서 깊은 장례식장에 수백 명의 문상객이 쇄도하였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장엄하면서도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슬픔과 기쁨이 묘하게 엇갈리는 양단의 감정을 체험하였다.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니 영원히 되살아나는 망자에 대한 존재론적 상실감이자 인식론적 희열이었다.

장례식 당일 문상객에게 전날 조문(뷰잉)행사처럼 시신 목례의 기회가 주어졌다. 고인은 꽃으로 덮인 개방된 관 속에 잠자듯 고요히 누워있다. 이발과 면도를 하고 곱게 화장한 얼굴에 푸른 꽃무늬 가운을 입은 채 합장하고 있는 저 세상의 백남준이 생전과는 다른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준다.

도무지 그답지 않다. 헐렁바지, 멜방, 소맷단을 둘둘 말아올린 커다란 흰 셔츠, 덧신 같은 헝겊신발 등, 그 자신을 브랜드화하기에 충분했던 그 기이한 차림새와는 딴판이다. 단지 목에 두른 스카프, 평소에 즐겨 했던 피아노 건반 패턴이 그려진 실크 스카프만이 그가 백남준임을 말해주고 있다.

백남준은 과연 세계적인 인물이자 미술계의 거목이었다. 문상객들 가운데 아방가르드 무용가 머스 커닝햄, 전설적인 오노 요코, 유명 미디어 비평가 러셀 코너, ‘성의 정치학’의 저자 케이트 밀레트, 전 휘트니 미술관 관장 데이빗 로스, 뉴욕 MOMA 큐레이터 바버러 런던, 요나스 메카스를 비롯한 플럭서스 동료들,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한용진, 김수자, 강익중 등 다수의 재미작가와 서울로부터 날아간 문화계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장례식의 주요 대목은 초대 연사들의 스피치로 이루어졌다. 오노 요코는 “우리가 현명하게 살도록 일깨워준 그의 존재에 감사한다”는 농축된 조사를 마련했다. 고인의 조카이자 법정대리인인 하쿠다 켄의 답사도 있었다. 백씨 가문의 기지를 이어받은 듯, 그는 재치 있는 말솜씨로 1998년 바지가 홀랑 벗겨진 백남준의 백악관 해프닝을 환기시켜 장내를 눈물 대신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장례식의 클라이맥스는 비밀리에 준비된 깜짝쇼였다. 백남준의 1958년 작품 ‘피아노 습작’을 인용, 조객(관객)들에게 가위를 나누어주고 옆 사람의 넥타이를 자르게 한 후 그 타이 자락들로 시신을 덮게 하는 그야말로 관객참여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잠자는 역할을 연기하는 퍼포머 같았다.

모든 것이 연극, 아니 “예술은 사기”라는 말로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그의 장례식답게 일종의 사기극과도 같았다. 실로 그는 생전에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TV침대’에서 몇 시간씩 잠을 잤었고, 공연하다 잠이 들어버린 ‘24시간’이라는 작품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죽어서도 ‘참여TV’라는 비디오 이상을 실현하게 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이제 그가 망자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 온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애도의 물결 속에서 그의 존재가 부활되고 있지 않은가.

장례식 다음날, 그의 시신은 마지막 혼백을 태우기 위해 웨체스터에 있는 어느 화장터로 실려간다. 본인의 뜻대로 유골은 미국, 독일, 한국 등에 나뉘어 안치될 모양이다.

전세계를 떠돌아 다닌 유목민답게, 이주의 아픈 경험을 작업으로 일궈낸 이산 작가답게, 동양과 서양, 나와 타자를 일체화하려 했던 코스모폴리탄답게 그는 망자가 되어서도 전세계를 여행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를 사랑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되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부메랑의 여행인 것이다.

쌈지스페이스 관장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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