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부처에서 내놓은 정책을 부총리급인 재정경제부가 부인하고, 재경부에서 내놓은 정책은 입법권을 가진 여당이 반대하고, 여론이 불리하면 ‘그게 아니다’고 물러서고…
정부 내부와 당정간에 조정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와 참여정부 후반기 혼란과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청와대는 ‘양극화 해소’ 등 대명제만 제시한 채 당정 조율능력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정부부처와 여당은 각각 손발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특히 부동산, 세금, 교육 등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분야에서의 정책난발과 반박, 해명들이 어지럽다.
◆고위 공직자들의 말잔치
고위 관료들의 말잔치가 정치인 못지 않다.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책을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개인 생각이나 소속부처에 국한한 시각으로 섣불리 의견을 내놓고 있어 설명 안 한 것만 못한 결과가 자주 초래되고 있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지난 1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건설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건축 승인권 환수안에 대해 “(재건축 승인 권한을)지금 가져온다, 안 가져온다는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건교부의 반발을 샀다. 김 차관보는 “지금 재경부에서 따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라고 해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에 앞서 박병원 재경부 1차관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난해 보류하기로 한 소수세율 인상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가, 여당의 반발을 샀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교육부와 협의 없이 “2008년까지 강북의 은평,길음,아현 등 3개 뉴타운 지역에 자립형 사립고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가 교육부의 반발을 불렀다.
공직자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 먼저 살짝 정책내용을 흘려보고 여론이나 여당의 반응을 살펴보겠다는 얄팍한 전략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여권 지방선거 표심에 눈치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여당은 표를 의식해 여론의 반발 기류가 감지되면 “일단 보류”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해 소주세율 인상안 보류에 이어, 3일 1ㆍ2인 가구 근로소득세 추가공제 폐지안 보류에 이르기까지 여론이 안 좋다 싶으면 성급하게 정부안에 반대하는 모습이다.
1ㆍ2인 가구 근소세 추가공제의 경우 재경부도 당장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라, 9월 정기 조세개편안에 포함해 큰틀 안에서 논의하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여당의 즉각적인 반대를 내심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다 보니, 정부 실무자들의 의욕상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정책 추진도 뒤로 미루기 일쑤다. 한 관계자는 “애써 만든 정책안이 국회 통과가 안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면 허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1ㆍ2개각 파동 이후 여당과의 정책조율 기능을 상실한 것도 한 원인이다. 추진 중인 정책이 보도된 뒤에야 관련 부처로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까지 있다.
당ㆍ정ㆍ청은 연구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할 정도로 관계 정상화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3일 여당이 제안한 ‘관계 강화를 위한 청와대 내 정무기능 부활’ 방안에 대해 청와대가 부정적인 견해를 내려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 "국가적 손실 초래할 수도"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러한 당ㆍ정ㆍ청의 정책 난맥상이 의미 있는 정책까지 폐기시키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이상민 간사는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 중에는 조세형평성과 투명성 강화에 기여할 만한 합리적인 정책들도 있다”며 “그런데도 그 정책이 가져올 혜택에 대해 정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아 여론에 밀리고, 폐기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속했다. 유럽 국가의 경우, 세금인상이 가져다 줄 혜택에 대한 인식이 확실해 오히려 세금을 내리려고 하면 “혜택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발한다는 설명이다.
이 간사는 “세금인상안 등 어떠한 정책을 내려면 일단 그 정책이 가져올 구체적인 혜택과, 혜택을 받을 대상자에 대한 면밀한 범위를 먼저 수립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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