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관세와 무역 장벽을 없애는데 열을 올리는 사이 절도, 뇌물 수수, 사기, 착취 등 갖가지 부정ㆍ부패가 국경을 뛰어 넘어 판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각국 정부는 법규를 강화하는 등 부패고리를 끊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의료계가 대표적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1일 발표한‘전세계 부패 보고서’에 따르면 코스타리카는 미국에서 받은 의료 원조금 4,000만 달러 중 20%가 개인 주머니로 들어간다. 불가리아 등 남동 유럽 국가 의사들은 무료 진료가 가능한 치료에도 50달러에서 1,100달러까지 뇌물을 받아 챙겼다. TI는 “전세계 의료 시장은 매년 3조 달러(3,000조원)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는데 그 중 최소 5%(150조원)가 행방불명 상태”라고 지적했다.
썩어 빠진 의료 시스템의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환자의 몫이다. TI는 “필리핀 의사들이 받는 뇌물이 10% 증가하는 동안 예방 접종을 받은 저소득층 어린이는 20%가 준다”며 “개도국을 중심으로 가짜 의약품이 매년 수 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내성 강한 질병의 확산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의료 시스템이 환자, 의사, 다국적 제약회사, 정부 기관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불투명한데다 워낙 큰 덩치로 움직여 부정ㆍ부패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들 다국적 업체들은 나라마다 관련 법규가 달라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는 동시에 법규를 강화하려는 나라의 의원, 정부 관료들을 상대로 한 로비를 통해 단속을 무산시키고 있다. 수사기관에 걸린다 해도 ‘현지 직원이 스스로 판단해서 한 일’이라고 발뺌하기 일쑤다.
실제 이들이 뇌물과 돈세탁 혐의로 적발당한 사례는 거의 없다. 1997년 OECD는 ‘뇌물과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지금까지 미국이 35건에 대해서만 기소했을 뿐 프랑스는 3건, 독일은 1건에 불과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 등이 최근 ‘내부고발자 보호 제도’를 대안으로 내놓았지만 이 역시 상대 회사의 영업을 방해하기 위해 경쟁 회사가 근거 없는 정보들을 마구 쏟아내는 통에 쓸모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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