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49ㆍ사진) 서울대 법학부 교수가 20여년 간의 헌법 연구를 중간 결산한 ‘헌법학원론’을 최근 펴냈다. 국내 헌법학 도서가 200여권에 달하는 점에 비춰볼 때 여느 대학 교재나 고시용 수험서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학계에서 보는 이 책의 의미는 각별하다. 정 교수가 국내 헌법학계의 차세대 대표로 꼽히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 머리말에서 “우리 헌법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 외견상 유사하다고 해서 그들의 논의를 우리 현실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방법론상의 오류를 피할 수 없다”고 했듯, 이 책을 국내 헌법이론 토착화의 시발로 보는 평가가 많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대뜸 “안타깝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이 개헌을 입에 올리고 있지만 정략적인 논의에 치우쳐 있다”며 “과연 헌법 조문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고서나 말하는 것인지 우려스럽다”고 개탄했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지만 올해도 연초부터 개헌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 교수는 “내년이 대선이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개헌을 하자는 것은 정치판을 아예 깨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차차기를 겨냥해 개헌에 대한 연구작업을 시작할 때”라며 “국회에 헌법조사반(가칭)을 구성해 최소한 2년 이상은 집중적으로 연구성과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의 방향에 대해 그는 “이제는 반드시 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만 했을뿐 그만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가 무책임하게 운영된 측면이 강하다”며 “대화와 타협을 기초로 한 민주주의는 국회 중심의 책임정치 구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정치의 문제는 한 마디로 “대통령제와 지역주의의 결합이 빚어낸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우리 헌법은 기본권에 관한 모든 내용을 백화점식으로 명시하고 있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며 현재의 헌법 조문에 대해서도 강력히 비판했다. “노동3권의 경우 이 권리를 헌법에 못박아 조합을 우위에 둠으로써 다양한 결사체의 활동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노동자 개개인이 무력하다는 전제 하에 단체가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개개인이 연봉계약을 하는 지금의 시대와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헌법 조문은 좀더 간결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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