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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기 지금] 2006년의 화두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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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기 지금] 2006년의 화두 '웃자'

입력
2006.02.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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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전도사 김형곤

웃음을 잃은 사람들과 우리 사회에 ‘웃음’을 위해 그는 먼저 크게 웃고, 웃기는 이야기를 한다. 웃어야 용기와 희망도 생기고 행복도 찾아온단다. “웃을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 그냥 크게 웃자.”

김형곤(46) 자신이 그랬다. 2000년 그는 추락했다. 국회의원 낙선과 세무조사, 이혼과 사업 실패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를 벼랑으로 밀었다. “그때 두 가지 결심을 했다. 120kg이나 되는 몸무게 빼기와 ‘웃자’였다. 웃을 일 하나 없었지만, 아침 저녁으로 웃었다. 쉽지 않았다. 미친 놈 취급도 당했다.

그래도 계속 웃고 다니니까 주변 사람들이 감동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외로움, 불안, 겁도 없어지고 긍정적이 되더라.” 다이어트에도 상승효과를 가져와 몸무게 30kg이상 뺄 수 있었다. 고통을 극복한 그 웃음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특히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40,50대에게 아직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주고 싶어한다.

웃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미국에도 네 번 갔다 왔고, 3월 30일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한다. 성(性)은 물론 자신의 다이어트, 이혼 경험도 기꺼이 재료로 쓴다.

그의 강연 실황을 담은 ‘김형곤 코미디폭소클럽’ 시리즈 테이프는 100만개 가까이 팔렸다. 지난해부터는 ‘웃음이 경쟁력이다’를 주제로 한 ‘엔돌핀 코드’ 강의를 시작했고, 책도 냈다. 책 첫 장에 그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했다.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웃는 한국’을 위해 그는 아예 거리로 나설 참이다. 강지원 변호사, 장애인 가수 강원래와 함께 3월 이름도 거창한 ‘웃자 코리아 국민운동본부’를 발족시키겠다고 한다. “한일월드컵 때처럼 서울시청 앞에서 1만 명을 모여 한꺼번에 큰소리로 웃는 이벤트를 시작해 전국 순회를 할 계획이다. ‘웃지 않은 한국’의 이미지를 바꿔 관광산업 경쟁력도 높이고, 캐릭터 상품 수익금은 웃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쓰겠다.”

한국 사람들이 잘 웃지 않는 이유로 그는 교육과 잘못된 인식을 꼽았다. “어릴 때부터 웃으며 말하는 교육을 하지도, 받지도 못했다. ‘웃기는 놈’이 말해주듯 웃음은 점잖지 못한 것,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유럽인들을 보라. 길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그들은 미소를 보낸다.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

돈, 돈, 돈에 동서, 남북, 노사, 노사모와 박사모, 강남과 북 등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관용과 용서와 이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첨예한 대립 속에 무슨 웃음이 있겠는가. 여기에 인터넷까지 익명이란 무기로 남의 생각이나 잘못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유머 가르치기를 강조한다. 누가. 부모가 먼저. 어디서. 식탁에서. 말없이 인상 쓰거나, 아이 잘못한 것 꾸중하고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말고 “재미있는 유머 있으면 하나 해라”고 말하기를 권한다. 조금 덜 우습더라도 크게 웃어주면 아이는 친구들과 유머를 나누고. 그러면 왕따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와도 친하게,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정치와 방송의 책임도 크다고 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정신적 풍요로움 보다는 ‘국민소득 2만 달러’만 외치고, 정직함 보다 영악하게 앞서가기를 부추긴 결과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같은 한탕주의가 성행하게 됐다.

방송은 또 어떤가. 미국 TV는 밤 10시나 11시에 코미디를 하는데 우리 TV는 온갖 사회비리를 파헤치고 남 비난하는 프로에 열중해 시청자들의 잠자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선 대통령부터 유머 한마디로 연설이나 회의를 시작하고 장관 회장 사장 교장들도 그렇게 하면 금방 ‘신나는 나라’가 된다. 성인이 하루 15번만 웃으면 병원의 환자가 반으로 줄 것이다.

웃음클럽을 만든 인도 의사인 마단 카타리나는 처음 친구 4명과 그냥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의 효과를 인도인 모두가 알게 돼 지금은 웃음클럽만 300개가 넘는다.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웃음 덕분이다.”

김형곤의 웃음 무기는 스탠딩 코미디. 1998년 미국 로빈 윌리엄스가 혼자 2시간 서서 얘기로 웃기는 비디오를 보고 ‘저렇게도 공연이 되는구나’하며 시작했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 ‘꽁자 가라사대’ 등 시사코미디의 개척자인 그는 “내 코미디 원천은 신문”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신문 10개 이상을 정독한다. 인터넷으로 뉴스 검색이 자랑은 아니다. 인터넷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싶은 세상만 알게 된다. 신문을 펼쳐서 그 안의 세상을 다 봐야 한다. 그것도 균형을 위해 몇 개는 봐야 한다. 똑똑한 코미디는 시사성이 강하고 메시지가 분명하고 공감이 있다.”

그는 “신문의 80%가 우울한 소식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하고 따듯하다”며 “그런 마음을 가져야 감사할 수 있고, 그 마음이 웃을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 그는 한 남자로부터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죽어 우울증에 걸려 1년 동안 웃음 잃은 아내가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그의 코미디언 데뷔 25주년 기념공연 ‘엔돌핀 코드’를 보고 드디어 웃었다는 것이다. “의사도 못 고치는 병을 고쳤다. 웃음은 삶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절대조건이다.”

그라고 화 나는 일이 없을까. 그러면 반응하지 않고 꾹 눌렀다가 사우나에 가서 땀으로 화를 빼낸다. 시간이 지나 생각하면 이해 안될 일도 없다고 한다. 웃음을 위해 가능하면 드라마도 웃기는 것을 보고, 술도 기쁠 때만 먹는다.

그런 김형곤은 하루 몇 번 웃을까. “15번 이상. 아침마다 헬스클럽에서 거울 보고 크게 몇 번 웃는다. 70평생 우리가 웃는 시간은 겨우 40일이다. 남을 기다리는 시간이 3년이고, 여자가 화장하는 시간이 1년 6개월인데. 10배는 늘려야 한다.”

이대현대기자

■ 유머에 손이 가는 '펀 소비 시대'

웃자. 책도, 영화도, TV도 ‘웃자’고 외친다. 웃어야 돈이 되고, 성공하고, 용기도 생기며, 병도 고치고, 다이어트도 된다고 말한다. 웃음이 곧 경쟁력이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며 유머 소개는 물론 웃음의 전략까지 가르쳐 준다. 왜 이렇게 ‘웃자’는 걸까.

웃음 잃은 사회

웃음이 없다. 버스와 지하철에도, 회사와 집 어디에도 웃음이 사라졌다. 인구 10만명당 24.2명(2004년), 하루 36명이 자살하는 현실을 보다 못한 정부가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까지 마련하겠다고 나선 우울증에 빠진 한국. 오늘도 사람들은 가난을 견디다 못해 음독자살하고, 억울해서 한강에 뛰어들고, 외로워서 목을 맨다.

우리나라 50대 성인이 하루 웃는 횟수는 겨우 4번. 그나마 그 절반 가까이는 하루 한번도 웃지 않고 산다. 웃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는 일자리를 빼앗고, 경제적 양극화는 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극복 못할 가난을 안겨주고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이나 행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보다 비난과 공격으로 일관하는 사회. ‘관용’의 저자 반 룬은 불안감이 원인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일까. 그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 웃음마저 앗아간 것인가.

'웃자' 문화상품들

그래서 더욱 지금 우리 사회에는 웃음이 간절하고,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웃자’ 문화상품이 넘쳐 나고 있다. 웃음에 관한 책만도 어설픈 유머집까지 합치면 50가지가 넘게 나왔다.

웃음 강사 김진배씨가 2년 전에 펴내 스터디셀러가 된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에서 유찾사(유머를 찾는 사람들)이란 별난 집단이 최근 펴낸 ‘맞서 싸우던가 웃어버리던가’까지. 아이들 유머 교육을 위한 ‘엄마의 유머가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란 책도 있다. 지난해 출간, 아직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긍정의 힘’의 저자인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 역시 ‘자주 웃으라’고 권한다.

반응도 만만찮다. ‘유머가 인생을…’은 그동안 무려 8만8,000부나 팔렸고, ‘엄마의 유머…’도 작년 7월에 나와 벌써 1만1,000부가 나갔다. ‘긍정의 힘’ 역시 6개월 동안 반디엔루니스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있다.

김동국 반디엔루니스 종로점장은 “유머관련 책이야 늘 있는 것이지만, 최근 더 많아졌고 올해 들어 판매도 20%가량 늘어났다” 며 “그만큼 사람들이 웃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냐”고 분석했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추석 예상을 뒤엎고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가문의 위기’에 이어 올해에는 19일 개봉해 11일만에 400만명을 기록한 ‘투사부일체’의 흥행성공이 증명을 해주고 있다. 설 연휴 이 영화를 봤다는 신동수(45ㆍ회사원)씨는 “웃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극장가의 ‘웃자’ 분위기는 최성국과 신이 주연의 ‘구세주’, 김수로 주연의 ‘흡혈형사 나도열’등에 의해 2월에도 이어진다. TV에서 ‘웃음’을 가장 강조하는 곳은 SBS. 8일과 15일 ‘SBS스페셜’에서 웃음이 성공, 돈은 물론 다이어트와 아토피까지 고친다는 ‘웃음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내보낸 데 이어 뉴스를 통해 웃음의 갖가지 긍정적 실험효과를 보도하고 있다.

일반 상품 역시 같은 값이면 웃기는 제품이 더 잘 팔리는 이른바 ‘펀(fun) 소비’시대가 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재를 털면 기침을 해 금연을 일깨워주는 재떨이, 남자 팔과 어깨 모양으로 만든 ‘여인의 팔베개’, 입 큰 개구리 모양의 가습기 등 ‘웃기는 제품’이 다른 것에 비해 2배까지 더 팔린다고 한다. 웃음을 잃은 우리 사회에 ‘웃음’이라는 화두는 2006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모양이다.

/이대현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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