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무기의 그늘’‘황진이’‘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등 소설 7편이 잇따라 영화로 제작된다. 서사적 구조를 지닌 유사 장르라면 거침없이 먹어치워 버리는 영화의 식성을 감안할 때 정통 소설의 영화화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만 해도 70~80%가 소설을 근간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동갑내기 과외하기’이후 인터넷 소설이 충무로를 뒤덮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정통 소설의 스크린 귀환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 인터넷 소설 퇴조
‘그녀를 믿지 마세요’‘그녀를 모르면 간첩’‘그놈은 멋있었다’‘내 사랑 싸가지’‘늑대의 유혹’ 등 2004년 홍수를 이뤘던 인터넷 소설 소재 영화는 지난해 2월 개봉한‘제니와 주노’를 마지막으로 급격히 세력을 잃었다. 현재 충무로에서 준비 중인 인터넷 소설 작품은 전무한 상태다.
인터넷 소설이 스크린에서 급격히 사라진 데는 인터넷 소설의 빈약한 서사 구조에 원인이 있다. 10대 초반부터 20대 후반의 젊은 층을 겨냥해 만든 통통 튀는 연애담은 잠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순정만화나 TV드라마의 진부한 줄거리를 답습하며 비슷비슷한 제목 만큼이나 고만고만한 내용으로 관객을 계속 유혹하기란 힘이 부쳤던 것이다. 타깃 관객 층이 좁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었다.
‘귀여니’같은 스타 작가를 앞세웠던 바람몰이가 다시 일지 않은 점도 인터넷 소설의 몰락을 부추겼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캐릭터와 감성에만 기댄 인터넷 소설의 퇴조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왕의 남자’의 성공에서 보듯 결국 관객이 원하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했다.
▲ 정통 소설의 반격
와신상담 끝에 인터넷 소설을 밀어내고 충무로에 재입성한 정통 소설의 진용은 한국의 대표작가를 총집결 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하다. ‘삼포 가는 길’(1981) 이후 한번도 영화화하지 않았던 황석영의 소설 가운데‘오래된 정원’‘무기의 그늘’ 등 두 편의 제작이 진행중이다.
‘바람난 가족’‘그 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이 지휘하는‘오래된 정원’은 가을 개봉을 목표로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암울했던 1980년대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오현우(지진희)와 한윤희(염정아)의 사랑이야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필감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무기의 그늘’은 한창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올 하반기 크랭크인을 기대하고 있다.
북한작가 홍석중의‘황진이’도 시나리오로 변신 중이다. 연출을 맡은 장윤현 감독은 원작에 충실한, 현대적 여성상으로서의 황진이를 담아낼 각오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지난달 18일 촬영에 들어갔다. ‘파이란’에서 뛰어난 감수성을 발휘했던 송해성 감독은 사형수(강동원)와 세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한 여자(이나영)의 교감을 담아 추석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 이청준의 단편 ‘선학동 나그네’를 옮긴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은 3월 촬영을 시작하며,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김중 감독에 의해 여름에‘거인’으로 거듭난다.‘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연출한 이재한 감독은 김영하의 ‘검은 꽃’을 장기 프로젝트로 차근차근 준비중이다.
정통 소설이 상실했던 입지를 회복한 것은 작가의 다양성과 폭넓은 소재 덕분이다. 최근 서사보다는 스타일에 지나치게 의존한 화제작들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것도 정통 소설의 복권을 앞당겼다.
곽신애 LJ필름 이사는 “정통 소설은 인터넷 소설과 달리 창의성이 뛰어나다”며 “진지한 내용의 유명 소설이 동시에 영화화하는 것은 충무로의 건전한 제작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영진씨도 “이야기의 골격이 잘 갖춰진 정통 소설의 영화화는 한국 영화의 근간을 튼튼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