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윤태진의 미디어비평] 언론에 '장사' 권하는 현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윤태진의 미디어비평] 언론에 '장사' 권하는 현실

입력
2006.02.01 00:00
0 0

설을 쇠고 나니 진짜 새해가 시작하는 듯하다. 일선 기자부터 언론사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언론사들도 병술년 한 해만큼은 기쁜 맘으로 좋은 뉴스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바람처럼 녹녹하지 않은 듯하다.

‘스포츠투데이’가 1월 부도 처리됐다. 18개월 전 ‘굿데이’가 부도를 맞고, 경인방송과 지방지 몇 군데도 폐업하면서 ‘언론사 불패론’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또 하나의 신문이 폐간 위기에 몰려도 별 뉴스가 되지 못한다.

언론사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언론사가 망하지 않기 위해 ‘장사’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일은 슬픈 일이다.

서울의 한 신문지국장이 자살한 사건이 뒤늦게 보도됐다. 부수 확장을 위한 신문사들의 압박이 결국 평범한 가장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쟁점이 되고 있는 불법 판촉행위나 불공정 계약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국에서는 여전히 피고름을 짜내 상품권을 돌리고, 문제가 생기면 본사는 모르쇠이다.

신문사의 편집국은 고매한 제 4부지만 광고국과 판매국은 처절한 중소기업 영업부인 것이 현실이다. 그야말로 ‘장사’를 잘 해서 이문을 남기기 위해 언론사가 위법과 편법을 저질러야 한다면, 이 또한 슬픈 일이다.

신문사들이 새해를 맞아 신임 편집국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향신문의 경우, 편집국장 내정자가 기자들의 임명동의 투표에 의해 거부되는 일이 생겼다. 만약 모든 일간지에 기자들의 임명동의 투표라는 제도가 있다면 비슷한 경우가 더 생기리라. 대체로 기자들은 장사를 잘 모른다.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간부가 종종 눈에 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자가 권력에 민감하고 이재에 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생 기자를 하다 퇴직한 후 어설프게 장사에 뛰어들었다가 망한 사람이 더 많다. 물론 편집국장 임명에 사소한 친소관계나 이해관계가 없을 수 없겠지만, 기자 대부분은 그냥 좋은 신문, 좋은 뉴스를 만들 수 있는 조직을 원할 뿐이다.

대기업의 언론사 경영 참여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제도 역시 언론의 일방적인 이윤 추구는 곤란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모기업을 살찌우는 방편으로 언론을 이용하는 것도 부당하지만, 언론사 자체가 재벌이 되는 것 또한 경계하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이다.

2004년에 기록적인 적자를 기록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2005년에 흑자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매출은 감소했지만 내핍을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는 부연설명을 읽고나니 별로 개운하지가 않다.

한 신문사가 일부 기자를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임금도 삭감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머릿속에 오버랩되고, 시청률 1%라도 더 올리기 위해 제작진들을 독려하는 방송사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흑자 기록이 반드시 축하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병원과 학교에까지 시장 논리가 적용되는 마당에, 언론사들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현실을 마냥 욕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두 배가 돼도 물로 배를 채우는 어린이들이 있는 한, 또 약값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사들이 한 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허덕대다가, 혹은 돈 버는 데 재미를 붙이다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잃지 않을지 걱정이다. 밥과 약이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을 지켜주듯이 언론은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연휴가 끝나 다시 아침마다 신문을 보고 저녁마다 뉴스를 보면서, 그 안은 달콤한 뉴스로 가득 차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다단계판매로 파는 건강식품들처럼 먹는 사람 몸보다 파는 사람 배를 위한 ‘상품’을 보긴 싫다. 어느 기자나 PD가, 혹은 어느 언론사 경영자가 ‘장사치’로 호명되길 바라겠는가?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