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타 예술장르와는 다르게 음악은 창조자와 감상자 모두를 자족케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미술이나 문학 등에도 그런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현재적으로 피드백되어 다른 느낌의 그것으로 변형되는 음악의 핵심엔 ‘순간적 합일’의 법열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법열’은, 그것이 일순간의 분출이라는 점에서 영원에 닿아있다. 시간예술이라는 음악 속에는, 굉장히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단 한 순간도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큼 난감하고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개인사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소리로 표현된 것 이상의 감정적 잉여와 심리적 상태를 살피는 건 순전히 청자(聽者)의 몫이다. 음악에 있어 청자는 제2의 창조자인 동시에, 공기의 형태로 떠도는 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또다른 연주자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창조자의 독자적인 창조물이 아닌, 창조된 것들이 다시 창조한 자를 내습, 불륜의 결과물을 반복 생성시키는 우주적 근친상간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 근친상간은 하룻밤에 쌓아올린 만리장성과도 같다.
The One Night Trio(이하 ‘원 나잇 트리오’)는 단 하룻밤의 잼세션으로 탄생한 재즈록 트리오다. 2004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조우한 이들은 단 한번의 합주를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 숨은 소리들을 동시에 간파해냈다. 어떠한 사전모의나 계산도 없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의 기본편성 외에는 그 어떤 음악적 수사나 장치도 없었다.
기분 좋게 한잔한 상태에서 각자의 악기를 붙들고 누군가가 즉흥적으로 던지는 화두를 좇아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적 느낌만을 표현해냈을 뿐이다. 그러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각각 10여년 이상 상이한 연주경력을 가진 이 베테랑 연주자들은 각자의 패턴으로 자유롭게 흘러가면서 보다 넓고 풍성한 음악적 공감대를 허공에 띄워 올린 것이다. 그것은 장르 불문하고 모든 음악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리 자체의 무한한 팽창과 반복이었다.
“우리의 사운드에 계산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코드나 패턴에 대한 기본 골격 정도만 정해놓은 상태에서 각자의 느낌에 충실하면서 교감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죠. 기본적으로 연주자에게 우선시되는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음악적으로는 그것을 리스폰스(response)라 부르는데, 그건 인간적인 부분까지도 포괄하는 친밀감과 애정이 없다면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요. 우리가 처음 잼을 했을 때 서로에게 공감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에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로에게 있었던 거죠.”
기타리스트 양윤일(32)이 밝힌 원 나잇 트리오의 첫날밤 이야기다. 그날 이후 이들은 수시로 연주를 하며 서로에 대한 느낌과 확신을 키워나갔다. 그러다가 지난 해 7월2일 저녁, 홍대 근처 ‘무경계팽창에너지’라는 클럽에 녹음장비를 들고 들어가 총 12트랙을 단번에 녹음했다.
녹음은 그 어떤 오버더빙이나 음향 트릭 없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엠비언스를 살리면서 몇 개의 코드만을 확장하고 반복하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완성된 음반의 러닝타임은 녹음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그런 만큼 음반을 통해 듣는 것과 공연에서 듣는 사운드에 별 차이점이 없다.
그럼에도 매 순간, 들을 때마다 음악이 주는 느낌은 똑같지가 않다. 원 나잇 트리오는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늘 미완성의 주물 형태로 놓여있기 마련인 소리의 미세한 결들은 다듬고 주무르면서 궁극적으로는 소리 자체의 투명한 느낌만을 좇아간다.
그건 음악이 흔히 연상시키는 음악 외적인 이미지나 특정한 감정의 되새김을 경계하는 일인 동시에 소리를 물(物) 자체로 감득하고자 하는 일종의 정신 수련과도 같다.
그들의 수련은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자세로 오체투지하는 수도승의 그것과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떤 경직된 도그마나 원칙에 이끌려 다니는 건 아니다. 이른바 프리스타일이라 널리 알려진 재즈의 연주방식처럼 이들이 소리를 대하는 태도는 만물을 아무런 고정관념이나 편견 없이 사물 그 자체로 느끼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그건 악기를 들고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표현하는 일이다. 모종의 장르적 강박이나 음악적 계산이 앞설 경우, 소리 자체의 진정성은 희석되고 관습화된 음악적 패턴만이 앙상하게 드러날 뿐이다.
이건 록, 재즈, 국악, 펑크 등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겪어오면서 오랜 시간 음악적 방황을 해온 이들이 원 나잇 트리오를 통해 선취한 해방감의 기초이자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H2O 삐삐밴드 등을 거치면서 한국 록음악의 산증인이자 탁월한 베이시스트로 명성을 알린 박현준(38)은 20년 가까이 음악을 해오면서 지금이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상태라고 고백한다.
각종 음악 프로젝트에 불려 다니며 드럼스틱을 잡으면서 음악계의 젊은 실력파로 통하는 막내 김책(28) 또한 자신이 항상 고민하고 있는 음악적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원 나잇 트리오가 암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어떤 음악적 규율이나 원칙으로부터 일탈한 듯 보이지만, 그러면서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듯 여겨지지만, 이들이 하룻밤의 교감을 통해 새삼 확인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방만하고 경박한 음악적 전위의 가식성이다.
소리 자체의 순수한 현존을 지향하는 이들은 ‘법칙을 극복하지 않는 자에겐 자유가 없다’고 공언한다. 말인즉슨, 음악적 본질에 대한 기본적 탐구가 전제되지 않은 파격과 해체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장 순수한 전위는 천둥벌거숭이의 사심 없는 마음으로의 회귀를 유도한다. 하룻밤의 조우가 영원으로 통할 수 있는 것도 그 벌거벗은 마음의 교감을 통해서이다.
그들의 첫 만남이 그랬던 만큼, 원 나잇 트리오는 ‘음악을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권하면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깝게 대하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마냥 감상에만 빠지지 말고 음악이 전해주는 정신적인 힘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생각해 보라고 당부한다.
사실, 음악이 응당 불러일으키게 되어있는 매 순간의 자의식은, 그것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보다 큰 인식의 힘을 불러일으킬 만큼 폭 넓은 관용을 제공한다.
그것은 자기를 고집하며 안으로 닫힌 자의식을 넘어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놓음으로써 해방되는 보다 큰 자아를 형성케 한다. 음악을 통해 모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의 짧은 합일이 원 나잇 트리오가 지향하는 영원한 음악적 노정의 새로운 시발이자 잠정적인 종착지점일 것이다.
지난 여름 녹음한 원 나잇 트리오의 음반은 비행선(www.bihaengsun.com)이라는 독립레이블을 통해 이달 중순 발매됐다. 1,000장 한정본으로 출시된 음반은 현재 신촌 근교 레코드숍이나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원 나잇 트리오가 주로 공연하는 홍대 앞 클럽을 찾아가면 현장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그들의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부지불식, 마음 내키는 대로 모여 공연을 하는 탓에 현재로서는 공연일자를 정확히 알려줄 수 없지만, 언제든 인터넷 검색창에 ‘원 나잇 트리오’를 치면 소리 소문 없이 모여 무경계로 팽창하는 이들의 독특한 사운드를 감상할 기회를 낚을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반복하건대, 원 나잇 트리오의 음악은 숙련된 연주력과 엄밀한 음악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량을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정서적 요인들이 한 음 한 음 엄정하게 연계되는 소리의 질서 속에 담겨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록과 재즈가 기본바탕이지만, 원 나잇 트리오를 들으면서 록과 재즈의 음악적 형식을 고찰하는 일은 부질없다.
이들은 그저 하룻밤 쌓아올린 만리장성을 다시 허물고 또 다른 밤을 향해 간다. 긴 밤 끊고 눌러앉아 했던 소리 또 하면서 자신을 우려먹을 짓 따위 이들은 하지 않는다. 원 나잇 트리오의 하룻밤은 늘 새로운 다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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