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해 ‘8ㆍ31 종합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이제 부동산투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한 부총리는 한술 더 떠 이 대책으로 서울 강남 등의 집값이 2003년 10ㆍ29대책 이전으로 환원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강남 아파트 가격이 10ㆍ29 대책 이전보다 20%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그 이상 떨어지는 것을 목표치로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한 부총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강남 아파트 가격은 이 대책 이후 급락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올랐기 때문이다. 재건축의 상징처럼 돼버린 은마아파트 가격은 8ㆍ31 대책 후 5개월만에 1억원 이상, 1년 전에 비해서는 3억원 가량 치솟았다.
지난해 8월말 8억7,000만~8억8,000만원에 거래됐던 은마 34평형 가격은 대책 발표 후인 9월에 7억9,000만원으로 떨어졌지만, 최근 용적률 완화설 등에 힘입어 10억원으로 올랐다.
고층아파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압구정동 구현대 36평형도 대책 발표 후 2억원이나 급등하면서 최근 12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와 규제 몽둥이로 강남 집값을 잡으려던 8ㆍ31 대책이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라며 부동산투기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강공책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포수가 길목에서 멧돼지를 잡아야 하는데, 엉뚱하게 산토끼와 나물 캐는 아줌마만 잡는다며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한 모 정치인의 비유가 정치공세로만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20여 차례나 부동산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강남 집값을 잡는데 실패했다. 이는 강남 집값이 들썩거릴 때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무더기 인ㆍ허가 규제와 세금폭탄 등 ‘강남 죽이기’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중과세 위주의 대증요법은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다주택자들은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이 급증하자 집을 파는 대신 자식들에게 증여하는 방식으로 우회돌파하고 있다. 강남 아파트는 이로 인해 매물이 부족해져 타워팰리스, 동부센트레빌 등 ‘명품’과 재건축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반면 강북과 수도권 주민들은 오르지 않는 집값에 좌절하고, 거래 위축으로 집을 팔려고 해도 수개월째 찾는 이가 없다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는 8ㆍ31대책을 보완하기 위한 추가대책을 2월 중 내놓겠다며 투기세력과의 전의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강남 투기세력과의 진검승부는 징벌적 중과세 및 규제 확대 등 반시장적 정책보다는 공급 확대 등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해야 한다. 강남에 대한 수요는 있는데, 규제 강화로 공급을 줄이는 임시방편으론 관료들의 머리 위에 올라있는 ‘강남아줌마들’을 잡을 수 없다.
차제에 강남에서 거의 유일한 공급수단인 재건축의 개발이익 환수장치를 강화하는 것을 전제로 재건축을 활성화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또 양도세 등을 한시적으로 내려 다주택자들의 퇴로를 열어주고, 실수요자들의 거래도 터주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2월 대책이 시장의 불신을 조장하거나, 기존 대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땜질정책이 돼서는 곤란하다. 노 대통령의 불패 의지가 강남아줌마들의 불패론에 부딪쳐 다시 패배하지 않도록 규제 위주의 정책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부동산대책을 기대해본다.
이의춘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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