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22일 서울 S초등학교 이모(59) 교사는 수업을 하던 중 “어디 고추 있나 보자”며 4학년 박모(9)군의 성기를 만졌다. 이 후 이 교사는 숙제나 일기장 검사를 하면서 때로는 칭찬의 의미로, 때로는 꾸중의 수단으로 같은 해 5월까지 네 차례나 박군의 고추(?)를 건드렸다.
별 생각 없이 저지른 이 행동 때문에 이 교사는 법정에 서야 했다. 미성년자 의제 강제추행 혐의다. 배심원이라 생각하고 먼저 양 측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 교사의 주장은 이렇다. 미워서,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다. 귀엽다는 표시로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이 했다. 공개된 장소였고, 직접 성기에 손을 댄 게 아니라 바지 위를 살짝 스치거나 만진 것일 뿐이다. 사회 통념상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추행이 결코 아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은 나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하고 있다.
반면 박군과 또 다른 증인들의 주장은 다르다. 박군 이외에도 여러 어린이들의 ‘고추’를 만졌다. 일부 어린이들은 싫다는 의사 표시까지 했다. 또 ‘고추’를 꼬집듯이 5분 동안 아프게 만진 적도 있다. 이 일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었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6일 이 교사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 만큼 이 교사의 행위가 현재의 성적 가치 기준ㆍ도덕관념 등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전통적으로 어린 남자아이 본인 및 부모의 암묵적인 동의나 가해자의 선의를 전제로 성기 노출이나 접촉을 관대하게 봐주고 이를 큰 문제로 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현재는 성의 상품화, 탈규범화가 미성년자에게도 급속히 확산되면서 성적 침해와 유혹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이전보다 증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군은 ‘미움 받고 때릴까 봐 거부하지 못했다’ ‘창피해서 어머니에게 일찍 말하지 못했다’ 고 진술하는 등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의 침해 및 억압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가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이 교사의 행위가 비록 교육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교육방법으로서는 적정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고, 정신적ㆍ육체적으로 미숙한 박군의 심리적 성장 및 성적 정체성의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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