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의 판결은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의 유해성이 11개 질병에 대해 ‘역학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이옥신 노출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는 임상 의학이나 병리학적으로 밝혀진 게 거의 없다. 다이옥신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특정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토대로 연구하는 역학적 방법 외에는 다이옥신과 질병 간의 인과 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1심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이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것에 비춰보면 판단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한 셈이다.
국가보훈처가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엽제와 33개 질병 사이의 개연성을 인정, 보상하고 있다는 점도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개연성이 상당 부분 인정된 13개 질병을 후유증으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뇌출혈, 뇌경색증 등 20개 질병을 후유의증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인과관계가 인정된 질병은 모두 후유증에 속한다.
손해배상 소멸시효에 대해서도 “시효(10년)가 이미 지났다”고 판단한 1심과는 달리 서울고법은 “피해자들이 질병과 다이옥신과의 인과관계를 분석하기 힘들고, 연구 결과가 축적함에 따라 질병의 범위가 확대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최병덕 부장판사는 “과학적 엄밀성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피해자 구제가 불가능하다”며 “다이옥신이 특정 질병을 유발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돼 제조사의 법률적인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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