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62), 명계남(54). 한국 연극의 얼굴을 책임지고 있는 큰 배우의 반열에 든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올해, 이들에게는 정초의 여유란 사치에 가깝다.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와 토크 콘서트 ‘사랑아, 웃어라’가 코앞이다.
“화려한 솔로이스트나 연주단 운영자에 음양으로 치어 쥐꼬리 월급 받고 죽어라 연습하는 처지죠.(중략) 좋아하는 여자한테 잘 해 줄 수도 없고….” 오늘따라 이 남자는 왠지 가라앉아 있다. 그를 달래주는 것은 맥주에, 브람스의 ‘교향곡 2번’. 바로 옆에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콘트라베이스가 언제나 그랬듯 함께 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내면 속에 품 잠겨 있다, 기운을 차리고 떨쳐 일어나는 모습은 어깨 처진 이 시대 남성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 그는 예술가라기 보다 우리의 이웃인 것. 교향악단을 비판하는 대목을 보자. “능력이라는 잔인한 차별, 잔혹한 서열, 무서운 등급 제도….”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독일 작가의 이름을 국내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이 작품은 1995년 명계남의 연극계 복귀작이라는 이름에 값했던 작품. 10년만에 갖는 이번 무대를 위해 명씨는 24일 연출자 김동연씨 등 다섯명의 스태프와 함께 서울 근교의 펜션에 들어가 막바지 연습에 열 올리고 있다. 2월 7일~3월 5일 우리극장.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 8시, 일 오후 4시. (02)762-0010
이제는 웃을 때면 눈가의 주름이 외려 자연스러운 손숙. 그가 인생과 사랑을 주제로 소담스런 우화집을 펼친다. 단막극 연작 무대 같기도, 토크 쇼 같기도, 콘서트 같기도 한 ‘사랑아, 웃어라’. 모두 11개의 장면으로 이뤄진 연극이다.
“작가가 쓴 희곡이 아니라 내 이야기,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서 여러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 작가 박예랑과 그가 함께 쓴 동명의 책을 1시간 30여분 동안 술술 풀어간다. 그의 결혼 생활과 사랑에 대한 상처까지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남편에게 띄우는 편지’가 좋은 예.
함께 출연한 남ㆍ여 배우와 극본대로 무대를 펼쳐가는가 하면 중간중간 열린 구조를 취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랑 이야기에 목이 간질간질해진 객석의 질문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객석에 생각을 묻기도 하는 이 무대는 결국 연극과 대담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장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최근의 추세를 연극적으로 반영한 이 무대는 판판이 다를 수도 있다. 더러는 기타ㆍ피아노 연주자, 조명ㆍ조감독 등의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무대로 불러내기도 한다. 그러면 무대 바깥에 있던 그들이 자연스레 대사를 하며 극에 개입, 극중 현실이 된다. 이 무대를 두고 연극의 형식 실험장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사랑의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라는 결론과 함께 손숙이 던지는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의상을 입어라, 분장을 하여라. 돈을 낸 손님들을 즐겁게 웃겨라.”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의 한 대목이다. 퇴장 직전, 손숙은 객석을 향해 말한다. “연극은 끝났다.” 이어 조명이 서서히 꺼지면서 막 내린다.
그리고 사랑은 객석을 향해 미소지을 것이다. 따스한 연민처럼. 연출 황재헌. 2월 9일~4월 9일 코엑스 아트홀. 수ㆍ금 오후 7시 30분, 목ㆍ토 오후 3시 7시 30분, 일 오후 3시. (02)744-7304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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