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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간첩단'으로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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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 '간첩단'으로 과장

입력
2006.01.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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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과거사위는 26일 동백림 사건에 대해 “조작은 아니지만 정권차원의 확대 과장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첩활동으로는 볼 수 없는 당시 일부 인사들의 실정법 위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무리하게 포장했다는 것이다.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중앙정보부가 검찰과 재판부에 금품로비를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정황상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입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됐다.

실체 있지만 확대 과장

과거사위는 동백림 사건 연루자들 중 일부의 국가보안법 등 위반 사례는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 방문(12명) 및 금품수수(26명), 특수교육 이수(17명), 대북접촉 주선(12명) 등은 사실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일부 인사는 귀국 후에도 북과 암호통신을 하고 난수표를 소지하거나, 실행은 하지 않았지만 지령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했다.

과거사위는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대북접촉 및 동조로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중정과 검찰이 관련자 203명 중 23명을 간첩죄로 기소했고, 이는 사건을 왜곡 확대 했다는 것이다. 실제 법원에서 간첩죄를 적용받은 사람이 1명도 없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는 설명이다.

과거사위는 무리한 수사가 이뤄진 이유를 정권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과거사위는 “1967년은 6ㆍ8 부정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규탄시위가 거셌다”며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동백림 사건을 확대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중정이 동백림 공작단의 일부로 발표한 서울대 학생서클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도 “학생시위를 고립시킬 목적으로 억지로 학원사건을 끼워 넣은 것”이라는 판단이다. 중정 판ㆍ검사 매수 시도 정황

과거사위는 중정이 재판 진행 중 검찰과 재판부에 금품을 제공하려고 계획한 사실도 밝혀냈다. 중정 문건 ‘동백림 및 통혁당사건 증거보강 수사계획’에 따르면 중정은 1968년 7월30일 대법원이 피고인들의 일부 혐의에 대해 법적용 잘못을 이유로 파기환송하자 검찰과 재판부에 대한 로비자금 성격으로 보이는 예산을 관련부서에 신청한 것으로 돼 있다.

문건에는 ‘검찰 지원비’로 검사 3명, 검사서기 3명에 대해 1인당 5만원씩 총 30만원, ‘재판부 지원비’로 판사 4명에 대해 1인당 5만원씩 총 20만원을 신청한 것으로 나와 있다.

과거사위는 “당시 부장판사의 월급이 5만6,000원임을 감안할 때 이 돈은 단순한 밥값이나 유흥비로 보기 어렵다”며 “물증을 제시하기 어려웠던 중정이 금품을 통해 검찰과 재판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출결의서나 회계장부를 찾지 못해 실제 집행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박정희의 개입 정도는

과거사위는 박정희 대통령에 사전 보고되고 승인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 단초를 박 대통령이 직접 제공했기 때문이다. 67년 5월14일 서독주재 한 언론사 특파원 실종사건이 나자, 독일유학 당시 북한과 접촉했던 임석진 교수가 5월17일 박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임 교수가 대북 접촉사실을 자복했고 이에 박 대통령이 수사 지시를 했다는 설명이다.

또 해외 혐의자 30여명의 국내 연행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의 승인이 있었다고 추론했다. 당시 독일 프랑스 등과 외교 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는 해외연행을 중정이 독자적으로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명확한 물증이나 증언은 없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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