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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묻지마 방화'가 남기는 끔찍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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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묻지마 방화'가 남기는 끔찍한 고통

입력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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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으로 수감됐던 희수가 12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다. 그가 막 교도소 문을 나서는 순간, 보일러실이 폭발한다. 몇 개월 뒤, 시내 한복판의 약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다.

며칠 후 아파트 단지에서 또다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다. 잇따른 대형화재로 도시 전역은 불안감으로 술렁인다. 화재조사원 민성은 이 화재들이 모두 방화라는 심증을 굳힌다. 상우는 현장사진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현장을 배회하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도시를 불태우는 연쇄방화범과 그를 쫓는 소방대원들의 전면전을 그린 영화 ‘리베라 메’ 의 내용이다. 한 개인이 방화라는 그릇된 수단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과 절망감을 안겨주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 영화였다.

하지만 이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얼마 전 미국 시카고에서는 경악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가정집과 차고, 식당, 공공건물, 학교 등 4곳의 연쇄 방화범을 붙잡고 보니 현직 소방서 부서장이었던 것.

가정과 직장에서 잡다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던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려 불을 질렀다고 했다. 이웃 일본에서도 지난해 5월 11건의 연쇄방화 범인이 공영방송 기자로 밝혀진 적이 있다. 그 역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불을 질렀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신문, 방송에서도 이 같은 ‘묻지마 방화’ 뉴스가 종종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방화범들 역시 최근의 경기침체와 취업난에 대한 짜증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사소한 복수심에서 비롯한 방화는 방화범이 느꼈던 것 이상의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불특정 다수에게 남긴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 소방방재청은 방화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상 처음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방화에 대한 특별 경계령을 내린 배경은 이처럼 방화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불은 재생과 정화의 상징이다. 인류는 이제껏 불이 악과 욕망을 소진시켜 정화함은 물론 새로운 탄생과 번성을 기약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한 개인의 엇나간 복수심에서 시작된 불길은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야누스가 될 것이다.

정정기 소방방재청 소방대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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