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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소리씨와 안내견 보은이의 새해/"엄마 눈 돼주느라 힘들었지, 미안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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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소리씨와 안내견 보은이의 새해/"엄마 눈 돼주느라 힘들었지, 미안하고 사랑한다"

입력
2006.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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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 보은이와 7년째 한가족으로 동고동락하고 있는 김예소리씨(42ㆍ여). 중요 무형문화재 30호(전가 가곡 시조부문) 이수자인 김씨는 안내견 이용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제가 시각장애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안내견 때문에 오히려 더 불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보은이가 온 후 김씨의 생활은 많이 변했다. 결혼을 했고 출산의 경험도 했다. “그 때부터 식구가 하나 둘 늘어났어요. 딸(보은이)이 먼저 생기고 남편(이후탁ㆍ45ㆍ직장인)이 생기고 아들이 생겼죠.”

식구가 늘어날 때마다 얼마나 질투를 하던지 아들 래현(5)이 태어나자 김씨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보은이는 몇 일간 끙끙 앓아 누웠다. “그땐 정말 사람하고 똑같더라구요” 시샘 많은 딸을 힐끔 쳐다보며 가벼운 손놀림으로 다독거려본다. 지금은 래현이가 많이 커서 보은이와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흐믓하다.

“보은이와 만난 이후 기쁨이 컸지만 이제는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도 생기네요.” 항상 바른 자세로 묵묵히 참고 기다려주던 보은이가 요즘 들어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나이를 많이 먹었죠. 사람으로 치면 환갑도 지난 나이인데.”

보은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김씨는 목구멍까지 올라와 울컥 하는 슬픔을 되 삼키며, 앞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보은이와 함께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더욱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새해를 설계해 본다. “힘들어도 보은이는 다 이해할거에요. 우리는 정으로 믿음으로 통하는 한 가족이거든요.”

글ㆍ사진=류효진 jsknight@hk.co.kr

■ 제 출입을 막는 사람들과 많이 싸우셨죠

제 이름은 보은이에요. 나이는 11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와 엄마 김예소리씨의 두 눈 역할을 7년째 하고 있답니다.

우리 엄마는 눈이 많이 불편하세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물의 형체만 겨우 알아 볼 수 있어요. 그래도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답니다.

무형문화재 이수자이신 엄마는 밝고 적극적인 성격에 동화구연 지도자, 선교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계시지만 때로는 무서운 싸움꾼이기도 하세요. 안내견인 저의 출입을 막는 음식점, 쇼핑몰, 마을버스회사 등… 싸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죠.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왜 저와 함께 가면 출입을 막는 걸까요. 하지만 엄마 덕분에 많은 곳을 드나들 수 있게 되어 기쁘답니다.

요즘 들어 엄마는 한숨이 느셨어요. 제가 은퇴할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이죠. 안내견은 활동 후 7~8년이 되면 판단력이 흐려져서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하니 다가올 이별을 준비해야겠네요.

엄마의 슬픈 표정을 보면 제 마음도 무겁지만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엄마의 두 눈이 되고 싶어요.

엄마! 제가 없더라도 밝은 표정 잃지 마시고 항상 저와 즐거웠던 일만 기억하실 거죠?. 엄마, 슬픈 표정은 안 어울리는 거 아시죠. 엄마 파이팅!

■ 우리 보은이 은퇴해도 건강해야 해

사랑스러운 나의 딸 보은아!

엄마는 우리 보은이를 생각할 때 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가슴이 울렁이곤 한단다.

우리 보은이를 만나 7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구나. 엄마의 희로애락의 인생 속에 우리 보은이가 함께 걸어와 주었구나. 어느 때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 또 어느 순간엔 기쁨으로 같이 웃었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 않고 배가 고파도 투정 한번 안 부렸지. 쉬나 응가가 마려워도 기회를 줄 때까지 잘도 참고 기다리는 착하고 인내심 많은 우리 보은이.

자랑스런 나의 딸 보은아! 엄마는 우리 보은이를 사랑한단다. 하지만 엄마는 네게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구나. 너는 평생토록 엄마만을 위해 사는 데 엄마는 네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구나. 고맙고 미안하다.

엄마 인생의 동반자인 우리 보은이. 우리 보은이 건강해야 해. 오래오래 살아야 해, 알았지.

그래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더 많이 전하자꾸나.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의 길동무가 되어 언제까지나 엄마와 함께 다니자꾸나. 꼬리는 춤을 추면서 말이야.

■ 보은이는 누구

안내견 보은이는 1996년 5월12일 레브라도 리트리버종(種)인 아버지 장군이와 골든리트리버종인 엄마 미스티사이에서 태어났다. 7남매 중 보은이, 별이, 복실이 3마리가 현역 안내견으로 활동 중이다. 이른바 국내 안내견 중 제1세대다.

안내견으로 태어난 강아지들은 생후 1년간 자원봉사자 가정에 분양되서 ‘퍼피워킹’이라고 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보은이가 태어날 당시에는 안내견 양성이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직원들의 가정에서 1년2개월간 사회적응과정을 밟았다. 또다시 1년간 백화점,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실전훈련을 거친 보은이는 자신과 ‘궁합’이 맞는 동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끝에 99년 지금의 엄마인 김예소리씨와 인연이 맺어졌다.

김씨가 지인의 소개로 경기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찾아왔던 것. 둘은 거기서 2주간 합숙훈련을 하며 성격, 의사소통, 보행속도 등이 잘 맞는지 검증해 보았다. 그리고 김씨 집에서 실시한 2주간 현지 적응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99년 6월25일 드디어 한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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