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는 명절이 다가오면 마냥 좋았다. 설이 몇 밤 앞으로 다가왔는지 매일 매일 달력을 보며 손꼽아 기다렸다. 형제가 많아도 설 때는 꼭 설빔을 해 입혔다. 단오빔이나 추석빔은 셔츠 한 장으로도 되지만, 설빔은 두툼한 외투거나 또 외투와 바지 일습이어서 어머니가 마지막 대목장을 보고 온 날 저녁에 옷을 내주면 그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우리는 명절이 다가와 마냥 즐거운데 이런 저런 음식을 장만하면서도 어른들의 얼굴은 꼭 즐겁지만은 않았다. 명절을 쇠는 데도 돈이 들어가야 하고, 설 끝나고 나면 또 돈 들어갈 일이 줄줄이 기다린다.
돌아 보니 없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꼬박 꼬박 설빔을 챙겨 입어도 어머니는 명절이라고 따로 새 옷을 지어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린 날엔 그런 모습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그걸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설빔은 있어도 어머니의 설빔은 없었다. 어쩌다 집안에 결혼하는 누군가 한복감을 끊어 보내면, 그걸로 몇 년 만에 새 옷 한 벌 지어 입으시는 게 고작이다. 백화점에 가도 시장에 가도 울긋불긋 좋은 옷들 참 많더라. 그 속에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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