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의 진실성이란 무엇이고, 관행적으로 통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이 우리 과학계에 던진 ‘연구 부정’의 관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25일 오후 과학기술회관에서 월례 열린포럼을 갖고 연구윤리문제를 다뤘다. 그러나 연구윤리의 정의와 범위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토론이 격렬해 연구윤리의 제도화에 이르기까지 멀고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연구 진실성이란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 부정 검증사례다. 그러나 조사가 끝난 이후에도 “논문 조작이 아닌 과장” “과학계의 관행”이라는 일부 여론이 있었다. 그만큼 국내에 연구 윤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민철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원장은 ‘연구윤리의 쟁점과 과제’라는 기조발제를 통해 연구윤리의 범위는 연구 과정, 출판, 실험실 운영, 사회적 책임성 등 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생명체를 다루는 생물학 의학 심리학 분야에서 사람에 대한 실험, 신체 기증, 실험 동물 등에 대한 윤리는 이 중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부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 서상희 단장은 ‘연구책임자의 역할과 연구수행상의 도덕성’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주제를 발표했다. 서 단장에 따르면 ▦이미 연구를 수행해 놓고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는 것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골라서 보고하는 것 ▦논문 작성시 날조, 위조, 표절 ▦실제 연구에 기여하지 않고도 공저자에 끼워넣기 ▦연구성과를 과장되게 홍보하는 것 등을 연구윤리 위배로 지적했다.
그는 “연구책임자는 연구비 확보, 연구 수행관리, 논문 발표 뿐 아니라 연구결과의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고, 연구원을 교육하며, 실험노트를 확인하는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제도화 시급
연구현장에 숨어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내부 제보 없이는 걸러지기 어렵다. 때문에 제보-조사-제재조치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고 담당기관이 설치되는 것이 절실하다.
미국은 1980년대 과학 사기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보건연구부속법,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STP)과 보건복지부 등의 규정을 제정했다.
또 보건복지부의 연구진실성위원회(ORI)가 상설적으로 제도 개선과 관리ㆍ감독을 하고있으며 거의 모든 대학과 연구소가 과학진실성위원회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정행위의 정의, 조사 절차, 제보자 보호, 행정조치 등을 담은 규정과, 정부와 연구기관 차원의 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칫 허울뿐인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민 부원장은 “생명윤리의 경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와 기관심의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실제적이지 못했고, 이해관계자가 위원으로 임명되거나, 위원이 피심의자를 변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결국 과학자를 키우는 대학교육에서부터 연구 진실성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방법론은 이견 팽팽
그러나 이공계 교수, 생명윤리 전공자 등이 주류인 청중석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팽팽히 맞섰다. 개념부터 “연구윤리와 생명윤리는 구분해야 한다”, “생명윤리를 포함한 광의의 개념이 연구윤리”라는 주장이 나왔다.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한 연구자는 “연구 윤리는 도덕이 아닌 제도”라며 “제재조치를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는다면 기구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교수는 “감시보다는 교육을 통한 사람 만들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 윤리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했지만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다. 한 토론자는 “초등학생때부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숙제를 해온 이들이 과학자가 된다고 하루 아침에 달라지느냐”며 “교육부가 교육 전반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또한 우리나라 전체 이공계를 통틀어 연구윤리를 교육할 교수진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도 걸림돌로 지적됐다.
■ 美의 '부정'에 관한 규정
날조·위조·표절…의도적일땐 '부정행위 성립'
미국의 규정에 따르면 논문작성시 부정은 FF&P로 정리된다.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날조(fabrication), 연구 재료 공정 등을 허위로 조작하거나 데이터를 바꾸거나 삭제하는 위조(falsification),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연구결과를 인용 없이 도용하는 표절(plagiarism)이 그것이다. 이러한 부정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무모하게 저질렀고, 증거에 입각한 제보가 있을 경우 연구 부정행위가 성립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 보건복지부 규정에 따르면 부정 혐의가 있을 때 이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의심 받는 연구자에게 있고, 실험 노트를 잃어버렸다는 식의 조사 거부는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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