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은 강경 반미 노선의 하마스와 미국의 한판대결 구도로 귀착됐다. 선거운동 막판 온건노선의 집권 파타당을 지원한 미국에 대해 하마스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팔레스타인 밑바닥 민심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간판을 달고 선거에 참여한 하마스 소속 후보들은 24일 일제히 “미국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긴급 지원한 200만 달러는 파타당 선거비이기 때문에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라며 유권자들의 반미정서를 자극했다.
미국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는 최근 팔레스타인 국경지대 주민 무료 식수 식량제공, 청소년 축구 지원 등의 명목으로 2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파타당이 선심성 예산을 쓰도록 한 것으로, 고작 100만 달러로 선거를 치르고 있는 하마스로서는 분개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3일 “테러리즘은 평화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다”며 미 국무부의 테러조직 명단에 포함된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세계를 지켜보는데 머물지 않고 미국에 유리한 정세를 만들기 위해 세계 자체를 바꾸는 ‘변형외교’를 주창하는 라이스 장관은 팔레스타인 총선을 변형외교의 첫 시험대로 삼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기든 향후 중동정세가 급격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심을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당을 이끄는 무스타파 바르구티 조차도 “이번 선거는 미국의 선거가 아닌 팔레스타인의 선거”라고 일갈했다.
이런 분위기로 선거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 주말까지만 하더라도 하마스에 대해 5% 안팎의 우위를 보이던 파타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영자지 하레츠는 투표 개시 직전 파타당과 하마스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현재 하마스는 본거지인 가자지구에서 60%이상의 지지율을 얻고 있으며, 파타당의 영향력이 강한 요르단강 서안의 헤브론 나블루스 등지에서도선전중이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파타당이 제1당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2당인 하마스와의 의석차를 크게 벌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맥락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대행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며 요르단강 서안의 정착민 철수가 불가피하다”며 하마스의 돌풍을 견제했다.
관측통들은 하마스의 선전이 미국이라는 외적 변수에만 의존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전했다. 1996년 집권한 파타당은 부정부패로 민심을 얻지 못한데다 이스라엘 군의 가자지구 철수 이후 치안확보에도 실패,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총 등록 유권자 134만 명이 지역구 대표 66명과 비례대표 66명 등 132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11개 정당에서 728명의 후보가 나섰고,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 등 850여 명이 국제선거감시단원으로 참여했다. 투표 마감 직후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26일에는 투표 결과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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