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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세 마디 말, 백 마디로 하기

입력
2006.01.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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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기업혁신의 사표(師表)로 불리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은 간결명료한 화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유명하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해 10월 방한해 그가 남긴 말만 봐도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기업의 제 1덕목은 승리하는 것이다. 승리하는 기업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사회 환원은 수익 창출에 승리한 기업의 몫이다.”덧붙여 그는 한국정부에 “형평성을 이유로 성장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2001년 GE 회장에서 물러난 후 세계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강연과 세미나 등에서 나온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펴낸 책의 표제가‘Winning’이라는 것에서도 잘 표현된다.

기업들이 ‘고객만족’이니 ‘감동경영’이니 ‘6시그마’니 하며 갖가지 화려한 수사로 시장에 접근하지만 그 유일한 목적은 기업의 생존과 주주의 이익을 위한 수익확대라는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반은 기업의 건강성에서 나온다는 소신도 분명하다.

●증세 문제 설왕설래

이처럼 짧고 명쾌한 논리로 기업경영과 사회적 책임의 관계를 설파했기에 전 세계 기업인들은 늘 그의 리더십과 어록을 좇는다. ‘Go Big’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GE를 비롯, 씨티그룹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듀폰 HP 소니 마쓰시타 등 글로벌 기업 CEO들의 신년 메시지가 한결같이 위기의식과 성장을 강조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기업인 70% 이상이 그를‘가장 존경하는 CEO’로 꼽고 있다. 이건희 삼성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신년화두로 제시한 ‘혁신 무한주의’나 ‘상시 수익경영’은 승리를 위한 정신무장을 강조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를 길게 언급한 것은 일주일 간격으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의 새해 TV연설과 기자회견에 나타난 논리와 주장의 모호함과 상충성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약자와 경쟁 탈락자까지 배려하고 보살펴야 하는 정부와 시장에서의 승리가 목표인 기업을 맞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리더의 책임이라는 중압감과 고뇌는 크게 다를 바 없고, 조직의 성격이 복잡하고 규모가 클수록 리더의 메시지는 선명하고 일관돼야 설득력을 갖는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우리의 재정과 복지지출 규모의 실상을 전하고 책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했는데 이를 바로 증세논쟁으로 끌고 가 정략적 공세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비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신년연설은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 등 미래 도전에 대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예산절약, 세출구조 조정, 탈세 발본색원 등의 대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고 토로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회 각계가 책임있는 자세로 지혜를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말로 어지러운 증세 논란이 벌어졌지만, 사실 몇 가지 전제만 붙는다면 이 같은 상황인식엔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세출구조 대수술과 공공부분 효율성 제고 등을 약속한 뒤 정권 차원을 넘어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차원의 중ㆍ장기 로드맵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연설 때 제시한 사실과 논거를 똑같이 인용하면서도 국민 반대 등을 내세워 “당장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피해 갔고, 야당의 감세주장에 화살을 돌렸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선거일정과 여권 반발 등을 의식해 정략적 판단을 했다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스토리 전개다.

●리더 메시지는 간결·정확해야

노 대통령은 정부가 예산절감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정책홍보사이트인 ‘국정 브리핑’에서 봐달라고 했지만, 그에 앞서 자신이 작년 말부터 구상해온 메시지가 연설과 회견을 통해 어떻게 뒤틀렸는지를 되돌아보는 게 순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신년회견에서 무모한 감세주장을 되풀이하고 공허한 국민연금개선안을 고집한 것도 여권의 메시지 관리가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권이든 기업이든 리더의 메시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성장을 통한 자연스런 세수증가 유도, 비과세ㆍ감면 축소, 음성탈루소득 과세강화로 간결하게 정리할 메시지를 이토록 복잡하고 피곤하게 끌고온 이유는 과연 뭘까.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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