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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희망을 가지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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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희망을 가지는 사연

입력
2006.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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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거물 브로커’ 로비 의혹 수사에서 법조계와 경찰, 기업가, 정치인 등 각계 인사 수십 명의 미심쩍은 돈거래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전ㆍ현직 판ㆍ검사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 경위야 어떻든, 충격적이다. 그동안 가장 청렴하다고 여겨진 판사와 검사들마저 부패의 늪에 빠져든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번지고 있다.

●사법기관 신뢰마저 위협 받아

사회 전부가 썩었다고 탄식해온 비관론자들에게는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만의 계절을 살고 있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받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는 심각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사법과 법조인이 누려온 사회적 신뢰의 수준은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역대정권마다 사법개혁을 과제로 내걸 만큼 문제도 많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이해관계나 호불호를 떠나 법관의 권위를 인정했다.

우리가 불과 20년도 안 돼 민주주의를 구가하게 된 것도 사회질서의 도덕적 등뼈로서 사법이 수행해 온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사법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믿음직한 신뢰의 자산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법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커짐에 따라 신뢰마저 위협받는 조짐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입법, 행정, 사법 외에 권력분립의 제4요소이자 정치적 사법으로 불려온 헌법재판소의 처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재심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고, 종종 재판결과를 둘러싼 논란도 없지 않았지만, 특히 대통령탄핵소추, 행정수도이전 등 나라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주요 사건마다 엄정한 심판을 내리며 법질서의 버팀목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자신들이 정략적 대립 등으로 해결하지 못한 현안들을 헌법재판소에 회부하는 책임전가 경향이 고질화되었고, 걸핏하면 헌법소원 등을 제기함으로써 헌법재판제도를 남용하거나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고서도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장외투쟁 등 정치공세를 계속하는 경향,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제도의 존폐를 거론하는 등의 행태가 나타났다.

행정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분풀이라도 하듯 헌법재판제도나 헌법재판관 구성을 손보겠다며 울근불근하던 일이나, 개정사학법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고도 장외투쟁을 병행함으로써 재판결과가 기대에 맞지 않을 경우 그 권위마저 부정하려는 태도를 드러낸 일 등, 헌법재판을 정략적으로 오남용하는 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정략적 행태가 헌법재판의 신뢰와 권위를 손상시킴으로써 결국 사법과 법질서 전체를 희화화시키는 공멸의 인자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묵묵히 소임 다하는 이들 있기에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법원 역시 그러한 사회적 압력과 도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이다. 국정현안 대부분이 법원에서 다투어지고 그 과정에서 판결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피켓을 들고 나서는 시민단체나 지역주민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동생활의 기반구조를 침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법과 법조인에 대한 사회의 불만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사실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대다수 판사와 검사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곳곳 썩지 않은 데가 없고 정부에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식의 과도한, 지성과는 거리가 먼 외삽(外揷)과 일반화의 풍조가 번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믿을 구석이 많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연이다.

공정하고 신뢰받는 사법의 실현은 한국사회가 그토록 많은 희생과 비용을 치르고 구현하고자 했던 문명적 소명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신뢰 인자로서 사법을 지켜내는 데에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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